4ㆍ9 총선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나라당 153석, 민주당 81석에 담겨진 함의는 무엇일까. 간단치 않은 민심을 제대로 읽고 복잡한 향후 정국에 바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정치 원로인 이만섭 전 국회의장과 조세형 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권한 대행을 모셨다.
사회= 이영성 부국장 겸 정치부장
_이번 총선을 평해주십시오.
이만섭 전 국회의장= 선거 사상 최악의 혼란한 선거였습니다. 첫째, 사상 최저인 투표율 46%의 의미를 읽어야 합니다. 공천파동과 계파싸움, 당권싸움, 권력투쟁에 대한 국민의 혐오가 투표율 저하를 낳았습니다. 18대 국회가 축복이 아니라 불신 속에서 출발하게 됐습니다. 크게 반성해야 합니다.
둘째 지역주의 선거가 되고 말았어요. 17대 때 영남에서 열린우리당 후보가 4명 당선됐는데, 이번에 통합민주당은 2명뿐입니다. 호남에서 한나라당은 전멸했어요.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전라도와 경상도에 집착할 것입니까. 셋째 굉장히 혼란스런 선거였습니다. 투표하면서 유심히 보니 정당이 15개나 됐습니다. 정당이 이렇게 많으니 국민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_총선 민심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요.
조세형 전 국민회의 총재권한 대행= 국민들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민심은 한마디로 ‘잘 살게 해 달라’, 곧 민생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좀더 잘 살게 만들 수 있는 정당을 찾았는데, 딱히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 결정은 못 내린 것 같습니다.
선거과정에서 각 정당들은 통합과 화합, 타협을 간절히 바라는 민심과 동떨어졌고, 그래서 실망이 컸다고 봅니다. 각 정당들은 민생을 추구하는 국민의 메시지를 빨리 읽어야 합니다.
주로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으로 귀결되는 것 같은데, 집권 초 한나라당은 타협이나 화해를 배척하고 독주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민생 측면에서 부자 정책 쪽으로 기울어졌고 경제성장만 강조할 뿐이어서 국민들은 염려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박근혜파를 배척하는 등 분열 양상을 보였지요. 민주당 또한 참여정부 시절 민생보다는 편가르기, 정치놀음에 치중하느라 민심이 이반, 대선 참패를 겪었는데도 이번 총선에서 새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견제세력을 만들어 달라’는 정치적인 이슈에만 매달렸습니다. 국민은 민생을 따지는데 민주당은 정치에 머물고 있어 더 얻을 수도 있는 의석마저 못 얻은 것 같습니다.
이 전 의장= 새 정부 초 내각인선 등 여러 문제가 있었음에도 한나라당에 153석이라는 과반의석을 준 것은 국민들이 경제살리기, 국민화합을 해 달라는 기대를 아직 저버리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여당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153석은 불안정한 과반이지요. 때문에 포용의 정치가 필요합니다. 이 대통령은 여당뿐 아니라 야당과도 대화하고 타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해야 합니다. 과거 건설회사를 경영할 때처럼 밀고만 나가는 리더십은 버려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땐 야당 대표와도 수시로 만나야 합니다. 앞으로 친박 탈당자의 한나라당 복당여부가 문제될 겁니다. 문을 활짝 열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계속 계파싸움, 권력투쟁을 하면 머지않아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내려질 것입니다.
민주당이 81석을 건진 것은 어느 정도 성공입니다.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가 잘하기를 바라면서도 견제세력이 있기를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야당도 발목잡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말고 건전한 정책 대결을 통해 대안세력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조 전 대행= 이번 선거 결과에서 주목해야 할 점으로 두 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하나는 수도권에서 민주당이 크게 패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한나라당이 과반을 차지했지만 내적으로 분열했다는 점입니다.
추가하자면 마지막까지 부동표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부동층은 야당이 좀더 정책적으로 나오면서 변화하는 것을 보고 싶었을 텐데, 민주당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해 대안이 없다는 당혹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한 지역주의가 영호남뿐 아니라 충청도에서도 대두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일종의 퇴보입니다. 지역주의는 결과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결국 정치가 문제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지역주의를 단번에 해소하진 못하더라도 극복의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소영 내각’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인사정책부터 상당히 편향됐지요. 충청의 소외감이 이회창이라는 인물과 결합된 것입니다.
이 전 의장=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지역주의 선거는 꼭 타파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선거구제를 고쳐야 합니다. 중대선거구제를 해야 합니다. 한 지역구에서 4~10명을 당선시키면 정치에 여유가 생기고 공천 갈등도, 돈 선거도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소선거구제 하에선 그야말로 ‘죽기 아니면 살기’입니다.
대선도 지금처럼 대통령이 절대권력을 쥐니까 죽기 아니면 살기로 치러집니다. 네거티브가 난무하고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갈 때쯤엔 상처투성이가 됩니다. 이제는 한 사람이 국가를 운영하기엔 시대가 맞지 않습니다. 대통령 권한의 분산 문제도 연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_개헌에 대한 연구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이 전 의장= 대통령 직선제 하에선 2년 후부터 국회가 대선의 싸움판이 됩니다. 이번에 친박연대가 “다음에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모시자”고 해 놀랐습니다. 벌써부터 이래서야 나라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18대 국회가 열리면 바로 특위를 만들고 가능하면 헌법연구위원회 같은 것도 여야 동수로 구성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했으면 합니다.
_다른 각도에서 보겠습니다. 한나라당 외에 친박연대 자유선진당 등 보수세력 의석을 다 합하면 200석이 넘습니다. 지금이 보수의 시대인지요.
조 전 대행= 이번에 보수세력이 국회의 3분의2를 차지했습니다. 비보수, 진보는 많이 줄었습니다. 균형이 깨졌습니다. 그렇다고 국민의 3분의2가 보수인 것은 아닙니다. 총선 결과는 과거에 대한 반작용이지, 우리 국민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보수를 향해 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국민들은 중도로 점점 몰리고 있습니다. 중도가 무엇인가, 바로 민생입니다. 우리를 잘 살게 해 달라는 것이지요.
이명박 정부는 민생 중심의 정치를 해야 합니다. 독선, 독주는 안 됩니다. 대운하처럼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것을 밀어붙이고, 부자정책만을 추진하면 안 됩니다. 정치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현실주의로 변해야 합니다.
키워드는 결국 민생입니다. 좋은 예가 90년대 영국의 블레어 정권입니다. 노동당이 오랫동안 정권을 잡았던 것은 토니 블레어 총리가 제3의 길로 실용화를 추진하면서 대처 정권의 좋은 정책도 많이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치권도 참조할 대목입니다.
이 전 의장= 동의합니다. 이 나라 정치를 보수, 진보로 양분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예를 들어 ‘이만섭은 뭐냐’고 할 때 많은 이들이 보수라고 하겠지만 나 스스로는 ‘진보적 보수, 개혁적 보수’라고 생각합니다. 건전한 보수와 열린 진보는 종이 한 장 차이지요.
이제 판단 기준이 어떤 길이 나라를 위한 애국이냐, 국민을 위한 길이냐가 돼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에 찬성합니다.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黑猫白猫 ㆍ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론이 있지 않습니까.
중국은 결국 경제대국이 됐어요. 이 대통령의 대선공약이 경제성장 7%, 국민소득 4만불, 경제7대국이라는 ‘747공약’ 아니었습니까. 그것은 국민의 통합된 에너지가 없다면 불가능합니다.
_총선 후 관심은 여야관계가 아닌 한나라당 내부에 더 쏠리고 있습니다.
이 전 의장= 한나라당은 153석이 불안한 과반인 만큼 ‘복당 불가’를 접고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친박연대 사람들도 당으로 돌아가 나라를 함께 살릴 생각을 해야 합니다.
대통령 임기가 5년인데, 지금부터 헤게모니 운운할 필요 없어요. 박 전 대표가 공천결과 두고 속았다고 했지만 속인 주인공들은 다 떨어졌어요. 한나라당이 복당 논란만 계속하면 국민은 다시 실망합니다. 오만하지 말고 정신차려야 합니다.
조 전 대행= 친이와 친박 세력이 물리적으로 합할 수 있겠지만 화학적 결합은 대단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 내부는 벌써 차기 대통령 선거전이 시작됐습니다. 친박 세력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친이측은 박 전 대표가 대권을 잡을 경우 피해를 볼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있습니다. 불안한 승리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앞으로 이 대통령이 친박 세력과의 관계에서 어떤 정치력을 발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현재 양측은 가혹할 만큼 배척하는 관계입니다. 박 전 대표가 공천 때 ‘속았다’는 극단적인 말까지 했는데, 도저히 같은 당에서 주고받을 말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간판은 하나인데 두 당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책도 상극이지요. 대운하 사업을 한다는 것인지 안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국민이 볼 땐 불안하고 일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표를 준 것은 대안이 없기 때문이지 한나라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전 의장= 친이든 친박이든 조금 멀리, 나라의 미래를 내다봐야 합니다. 차기 대통령 얘기가 나오지만 앞으로 5년 남았어요. 박 전 대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 특정계파의 보스가 아니라 나라 전체를 걱정하는 지도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나라 살릴 생각부터 해야지, 대통령을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니예요. 대통령은 하늘이 낸다고 하지 않습니까.(웃음)
이 대통령에도 당부할 말이 있어요. ‘747 여객기’를 무리하게 이륙 시키려다간 폭발할 수 있어요. 대선 공약이라 하더라도 노이로제를 가질 필요 없어요. 대운하를 국민이 반대한다면 무리하게 추진할 이유가 없어요. 경제성장 7%에 집착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 템포씩 늦춰가며 인내와 대화, 타협으로 신중하게 했으면 합니다.
정리=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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