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래의 한국 패션계 유망주랍니다. 꼭 눈 여겨 봐주세요.’
서울 한 실업계 고교 학생들이 전국 단위로 열린 패션디자인 콘테스트에서 총장상을 비롯해 4개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주인공은 신경여자실업고등학교(신경여실)의 의상과 학생들. 이들은 지난달 서울여대가 주최하고 교육과학부가 후원해 열린 제1회 전국 패션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포함해 은상 2명, 동상 1명 등 참가자 4명이 모두 상을 받았다. 전체 11명 수상자 중 40% 가까운 비율로 심사 위원 모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10일 오후 시상식을 앞두고 학교 실습실에 모인 네 학생은 지난 몇 달 동안의 고생을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가체와 비녀에서 영감을 얻어 풍성한 바지를 만들어 대상을 받은 안윤정(18) 양은 “온 가족을 동원해 밤새도록 천을 땋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고, 정민영(18) 양은 “포스터 칼라를 처음 써본 탓에 물의 농도가 조금 달라져도 색이 많이 변해 수 천 장 가까운 그림을 그려야 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유지형(18)양은 옷 파는 상인 행세를 했던 기억을 털어놓았다. 유양은 “윤정이와 함께 샘플을 얻으려 매일 같이 동대문 시장에서 발품을 팔았다”며 “학생 티를 안 내려고 큰 가방을 메고 장사꾼처럼 너스레를 떨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실업계 학교에 대한 주변의 편견이었다. 안 양은 “사람들이 ‘실업계 고교에 다닌다’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봐 견디기 어려웠다”면서 “그런 편견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들 앞에 놓인 현실의 벽은 이보다 훨씬 더 높다. 패션에 대해 더 공부 하고 싶어도 수학능력시험 성적이라는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이화영(40) 지도교사는 “요즘은 학부모나 학생 대부분이 대학 진학을 원한다”며 “일반계 고교 보다 국ㆍ영ㆍ수 과목을 적게 배우는 실업계 학생들은 동등한 기준으로 경쟁해서는 대학 가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도 문제는 있다. 실업계 고교는 전문대 교육과정을 토대로 교육을 진행하기 때문에 전문대에 입학하면 똑 같은 것을 두 번 배우는 꼴이다. 이 교사는 “일반대학은 실습보다는 이론에 너무 치우쳐 있는 게 문제”라며 “실업계 고교, 전문대, 일반대의 교육 내용을 차별화하고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 네 수상자는 꿋꿋이 꿈을 키워가고 있다. 권미경(18) 양은 “명품의 가치를 지니면서 가격은 저렴한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진짜 명품은 부자 몇 사람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72)씨를 존경하는 지형양은 “실용적인 한복을 만들어 기모노를 입은 사람이 많은 일본처럼 거리에 한복 입은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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