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성 피부염 환자를 치료하면서 환자나 보호자에게서 듣는 가장 섭섭한 말은 "피부약은 독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피부과 의사는 오로지 피부염만 좋아지게 할 뿐, 자기 몸이 아니라고 환자에게 독한 약을 처방한다는 말인가?
피부약이 독하다는 이유는 스테로이드제 때문이며, 일단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면 효과가 금방 나타난다. 의약분업 전에는 일부 약국이 스테로이드제를 과다하게 판매한 경우가 없지 않았고, 지금도 피부과 전문의가 없는 일부 병원에서 스테로이드제를 적정량 이상으로 사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스테로이드제는 마치 칼과 같은 양면성이 있어서 잘못 쓰면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잘만 사용하면 유용한 도구라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똑같은 칼이라도 쓰는 사람, 쓰는 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것은 마치 어린이 앞의 칼과 일식집 주방장 앞의 칼이 다른 것과 같다. 칼이 위험하다고 이 세상의 칼을 모두 없앨 수 없는 것처럼, 스테로이드제가 독하다고 피부과 치료에서 스테로이드를 안 쓸 수는 없는 것이다.
필자의 환자 중, 피부과 약은 독하고 좋아져도 그때 뿐이라며,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를 위해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국경에 있는 사해(死海)에 갔다 온 중학생이 있었다. 2003년에 있었던 일이다.
중학생 환자가 자신의 어머니와 심한 말다툼을 하면서 진료실에 들어오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모자는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에 유명하다는 병원은 다 다녀봤지만 완치가 안 돼 한방 치료를 받고 있다"며 필자를 찾아왔다. 환자 상태를 살펴보니 개인병원에서 약물 치료를 너무 많이 받은 상태였다.
당시 환자는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인해 어머니와 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고, 성격 장애까지 보이기도 했다. 한약 치료를 받는 이유는 한약이 약물 부작용이 적다는 얘기를 주위에서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호전 기미가 보이지 않자, 모자는 피부염 상태를 알아보려고 대학병원을 찾았던 것이다. 환자 어머니는 아들을 피부염 치료의 최적지인 이스라엘 사해에 보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필자에게 물었다.
사해에서 3개월 치료해 아토피성 피부염을 완치했다는 체험기를 아들이 인터넷으로 본 뒤 공부도 안 하고 사해에 보내달라고 졸라댔다는 얘기도 했다.
필자는 이들에게 "사해에서 계속 살겠다면 가도 좋지만, 다시 올 생각이라면 가지 마라"고 말했다. 기후조건 등 환경이 달라 설혹 아토피성 피부염이 좋아진다고 해도 귀국하면 재발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해줬다.
당시 환자 가족은 의사의 조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자가 필자를 찾은 이유는 단지 자신들의 결정이 옳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서였던 모양이었다. 물론 피부염이 얼마나 심했으면 사해까지 갈 생각을 했는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결국 환자는 사해로 갔고, 그곳에서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환자 증상은 나아진 것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사해에 있는 동안 체재비와 치료비는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였다.
6개월 후 환자 가족은 다시 필자를 찾았다. 필자로서는 너무 뜻밖이었다. 환자의 자존심이 강해 더 이상 필자를 찾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돌아온 환자를 본 순간 필자는 무척 반갑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다.
필자는 환자에게 광선 치료법 중 단파장 자외선B 치료를 적용했다. 환자가 약물 부작용 증상을 보였고, 또한 약을 굉장히 싫어했기 때문이다. 한 달이 지날 무렵 환자의 증상은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환자는 필자의 말을 조금씩 듣기 시작했다. 어머니와의 관계도 좋아졌다. 현재 고교생인 이 환자는 지금도 필자를 찾아온다. 재발 방지 치료를 받기 위해서다. 어머니에 따르면 과거에 보였던 반항아적 기질도 없어졌다. 의사 말을 잘 따르는 모범 환자로 변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단기간의 치료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볼 수 없는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들은 인터넷이나 광고지 혹은 입소문에 현혹돼 근거없는 민간요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또한 단편적인 지식으로 부적절한 치료를 하는 경우 치명적인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아토피성 피부염은 단기간의 치료로 완치되거나 특수한 비방으로 치료되는 병이 아니다. 아토피성 피부염을 잘 이해하고, 피부과 전문의의 적절한 처방을 따르는 것이 가장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며 안전한 치료법임을 깨닫고 올바른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노영석 한양대병원 피부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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