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릴 지브란 / 열림원
1931년 4월 10일 <예언자> 의 시인이자 화가인 칼릴 지브란이 뉴욕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48세였다. 사인은 간경화와 결핵 초기 증세, 독신으로 살았던 그가 술로 외로움과 육체의 고통을 달래려 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는 레바논 태생이다. <예언자> 에는 그 영향이 짙다. 12살 때 가족과 미국 보스턴으로 이민 갔던 지브란은 이후 귀국과 미국행을 반복하며 아랍과 서구, 이슬람과 기독교, 조국의 고대 예언자의 세계와 현대 물질문명의 이질성을 넘나드는 체험을 한다. 25살 때는 파리로 가 2년 동안 미술 공부를 하며 로댕을 만났다. 그의 유해가 레바논으로 돌아갔을 때, 베이루트 항에는 개항 이래 최대의 인파가 그들의 나라가 낳은 천재를 조문하기 위해 몰려들었다고 한다. 예언자> 예언자>
지브란이 1923년 영어로 발표한 <예언자> 는 흔히 ‘20세기에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 혹은 ‘현대의 성서’로 불린다. 그가 15살 때부터 구상해 25년 만에 완성했다는 책이다. 오르팰리스라는 가상의 성을 떠나는 예언자 알무스타파가 여자 예언자 알미트라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본 모든 것’을 결혼, 아이들, 일, 슬픔과 기쁨, 종교, 죽음 등 26가지 주제로 나눠 이야기한다. 지브란은 시공에 관계없이 인류에게 공통적인 삶의 지혜를 절제된 표현, 깊은 비유의 산문시 형식에 담았다. 예언자>
<예언자> 는 한국에서도 1960년대부터 사상가 함석헌, 시인 강은교 등 많은 역자에 의해 수십여종의 번역본이 나왔다. 1970년대 말 이 책이 한창 베스트셀러일 때 기자가 읽었던 건 누구의 번역이었는지도 잊었지만 “사랑하라, 그러나 서로 구속하지는 말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에 일렁이는 바다를 두라”는 구절만은 지금도 입에 맴돈다. 시인 류시화 번역의 열림원 판(2002년)은 최초로 지브란의 그림을 수록한 번역본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성화 혹은 로댕의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담박한 수채화들은 지브란의 글과 그림이 하나임을 보여준다. 예언자>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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