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기업인들은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자식들에게 기업을 안정적으로 물려 줄 수 있을까?” 당연히 상속ㆍ증여세는 눈엣가시다. 그래도 지금까지 드러내놓고 상속세 폐지를 주창한 적은 많지 않았다. “부의 세습을 막아야 한다”는 국민 정서의 역풍을 맞아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탓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 친화적’ 행보에 편승해 상속ㆍ증여세의 근간을 뒤집어 보겠다는 태세다. 총대는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멨다. 상속세를 폐지하는 대신 자본이득세를 도입하자는 것. 정부도 합리적인 완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화답’했다. 금기시 됐던 상속세 폐지 논의가 공론화한 것인데, 찬반 논란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 “경영권만이라도 세습을”
재계의 요구를 요약하면, “부의 세습은 아니라도 경영권만이라도 물려줄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대한상의 이현석 상무는 “(상속재산)처분 시점이 아니고 (상속)발생 시점에 세금을 물리기 때문에 현금으로 상속을 못하면 주식이나 건물을 팔아서 세금을 내야 한다”며 “결국 지분율이 떨어지고 공장이 없어지면서 경영권을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재계는 아무런 대가 없이 부를 대물림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호주, 캐나다 등처럼 상속세 대신 자본이득세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100억원에 구입한 부동산을 아들이 상속 받았고, 몇 년 뒤 200억원에 팔았다고 치자. 지금은 상속 시점에 당시 시세를 기준으로 과세가 이뤄지기 때문에 세금을 낼 돈이 없다면 부동산을 팔아서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자본이득세가 도입이 되면 처분 시점에서 자본차익 100억원에 대해 세금을 물면 된다. 단지 과세 시점만 늦추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 “자산 양극화 심화된다”
상속세 폐지에 대해선 여전히 저항감이 크다. 무엇보다 자산 양극화를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상위 1%의 극소수 땅부자들이 국내 부동산의 절반 이상(51.5%)을, 상위 5%가 82.7%를 독점했다. 상속ㆍ증여세 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의 대물림이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는 “상속ㆍ증여세는 소위 자산 재분배를 통해서 부의 형평성을 촉진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대부분의 국가들이 엄격한 상속세제를 운용하고 있는 실정에서 몇몇 국가를 사례로 들며 폐지를 운운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자본이득세의 부작용 우려도 크다. 자산을 처분하지만 않는다면, 단 한 푼 세금을 내지 않고도 몇 대를 이어서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고 부를 대물림할 수 있다. 현금으로 상속을 받는 경우 세금을 전혀 내지 않아도 되는 문제도 남는다.
■ 싸움의 결론은?
재계의 진짜 노림수가 상속세 폐지에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대한상의 관계자도 “당장 상속세 폐지 보다 상속세율 인하를 통해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부 역시 폐지 보다는 완화에 무게를 두고 검토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도 우리의 세율이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다. 최고세율(50%)이 적용되는 기준도 과세표준 30억원으로, 20억원 안팎인 미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높다. 김기원 교수는 “가업승계가 기술전수에서 상당히 중요한 독일의 경우 중소기업에 대해 10년간 상속세를 유예하는 등의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가업(家業)상속공제 등을 확대하는 정도면 모를까 상속세 자체를 손대는 경우 심각한 폐해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문향란기자 iami@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