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우리는 천혜의 아름다운 해안과 수산자원의 보고였던 충남 태안에서 최악의 기름유출사고를 겪었다.
바다와 함께 평생을 살아온 현지 주민들은 물론이고 서해의 낙조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은 그야말로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거대한 재앙 앞에 우리가 손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 또한 우리를 더욱 절망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기적은 절망의 끝에 있었다. 죽어가는 갯벌을 조금이나마 살리고자 했던 자원봉사자들의 행렬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건 단지 기름범벅이 된 바위와 모래를 닦아내는 것이었지만 그 힘은 실로 놀라웠다.
살을 에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그들이 한 방울 한 방울 흘린 땀방울들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던 기름때를 녹여내기 시작했다. 기름유출 사태가 발생한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연 인원 100만명의 자발적이며 정성어린 손길들은 지금도 ‘태안의 기적’을 만들고 있다.
이번 태안에 모아진 범 국민적인 자원봉사활동은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전 세계에서도 깜짝 놀란 역사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자원봉사 참여율은 20.5%로 선진국과 비교하면 절반을 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1996년 청소년들의 자원봉사 의무화를 시작으로 지방자치단체별로 자원봉사센터를 만들고 ‘자원봉사활동기본법’을 제정하는 등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또 대학 진학 시 사회봉사 특별전형이나 취업시 혜택을 주는 등의 자원봉사 증진을 위한 인센티브도 꾸준히 제공해 왔다. 그러나 아직도 봉사활동은 일회성의 형식적인 일면이 있는가 하면 막상 봉사를 하려해도 활동거리가 부족한 실정이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라고 하지만 가족해체로 인한 홀로사는 노인, 한부모 가정, 고아와 다름없는 소년소녀가장, 조손가정은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또 농어촌의 결혼 이주여성, 외국인근로자, 새터민 등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우리 모두의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대책을 모두 정부 몫으로 돌리기엔 그 비용이 너무 크다. 우리 국민들의 자발적인 자원봉사만이 이들 소외계층과 소수민에 대한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자원봉사를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하면 천문학적인 액수가 된다. 2005년도 정부 자료에 의하면 자원봉사활동의 경제적 가치는 3조1,710억원으로 추산되며 이는 2004년도 국민총생산(GDP)의 0.41%에 해당된다. 이 같은 수치는 2008년도 사회복지예산의 14%에 해당되는 큰 액수이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라는 홍익인간의 정신과 어려울 때 서로 돕던 두레나 향약 등 상부상조의 소중한 전통이 이어져 왔다. 전 세계적으로 1억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활동하는 대표적 국제기구인 ‘적십자’의 기원도 19세기 말 이탈리아에서의 전투현장에서 부상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마을의 부녀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봉사활동이 그 시작이었다.
이제 ‘태안의 기적’은 태안 뿐 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샘 솟아나야 한다. 또 정부와 NGO는 물론 기업들도 평소 시민들이 자원봉사를 학습하고 체험할 수 있는 자원봉사의 기회를 자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가 태안에서 소중하게 경험한 자원봉사의 ‘기적’이 우리 사회에 자원봉사 문화의 정착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하다.
이세웅 대한적십자사 총재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