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국민이 정치보다 앞서가고 있습니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겨야 한다는 점을 새삼 절감했어요. 대표가 총선을 잘 마무리했으니 7월까지 돼 있는 임기는 채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끼리 얘기인데요, 무소속 의원들을 영입한다거나 하여 한나라당 의원 숫자를 마구 늘리지 마세요. 국민이 허용한 이명박 정부의 밑천은 지역구 의원 131명, 정당득표율 37%입니다. 여기서 출발을 합시다.”
이명박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어제 조찬회동을 했다. “”의 앞부분은 4ㆍ9총선 다음날 대통령이 수석ㆍ비서관회의에서 한 말이고, 이어진 발언은 강대표와 한 이야기다. “우리끼리…” 이후의 말은 공개되지 않아 내용을 알 수 없지만, 한나라당 ‘총재’ 역할을 하고 있는 이 대통령이 강 대표와 한나라당을 향해 했을 법한, 했어야 할 발언을 만들어 본 것이다.
굳이 이 대통령을 한나라당의 ‘총재’라고 한 것은 지난해 대선과 이번 총선을 지켜본 국민은 다 알기 때문이다. 대표는 강재섭씨나 통합민주당의 손학규씨와 같이 그야말로 당의 대표다. 하지만 총재(總裁)는 다르다. 문자 그대로 ‘어떤 기관이나 단체에서 모든 사무를 관리ㆍ감독하며 제반 업무를 결재하는 사람’이다.
■ 한나라당 지지는 곧 MB 지지
강 대표가 자신의 지역구를 포기하여 원외(院外)를 자처하고, 손 대표가 낙선이 예상되는 지역에서 ‘맨땅에 헤딩하는’ 모습은 그들이 당대표이기에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정치다. 총재라는 표현에 익숙했던 김영삼ㆍ김대중씨가 아니라도 이회창 총재와 심대평 대표를 구분하고 있는 자유선진당을 보면 알 법하다.
당정분리의 플래카드를 걸고 있지만, 4ㆍ9총선 이후의 한나라당이 이 대통령의 ‘총체적인 결재’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며, 그것이 잘못됐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지 않다. 지난해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서 박근혜씨는 ‘대표’격이었고, 이명박씨는 ‘비주류’였다.
경선에서 후보가 확정되고 대선에서 승리하는 과정에서 비주류와 주류가 슬그머니 자리를 바꿨다. 대통령직 인수위 과정에서 주류와 비주류가 뚜렷이 구분되기 시작하더니, 총선 공천과정을 거치면서 한나라당은 ‘이명박당’으로 추스려졌다.
물론 감정의 표현이 없을 수 없었고, 의리의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박근혜씨가 지난해 경선 과정에서 던졌던 ‘아름다운 승복’은 경선의 결과, 나아가 대선의 결과까지 포함한 승복이다. 이번 총선의 공천과정에서 이른바 ‘친이(親李)’ 인사들이 대거 전선에 나서게 되고, ‘친박(親朴)’ 인사들이 많이 탈락한 것에도 ‘아름다운 승복’은 이어졌어야 한다.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 인사들이 친박연대나 무소속으로 나서 다시 지역 주민들의 심판을 받은 것은 별개의 문제로, 정치인으로서 가능한 선택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한나라당 후보를 버리고 그들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이명박당’에 대해 ‘부(否)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그런데 친박연대나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사람들 가운데 집권여당의 우산 밑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다니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또 그건 그렇더라도 한나라당이 벌써부터 이들 중 일부를 받아들여 체중을 불릴 궁리를 한다니 황당하다. 집권여당, 나아가 ‘이명박당’은 국회에서 과반수를 조금 넘는 파워를 가지라는 것이 국민의 뜻으로 확인됐는데도 말이다.
■ '反 MB' 영입은 민의와 어긋나
“국민이 정치보다 앞서가고 있다”는 이 대통령의 인식이 진정이라고 믿기에, 한나라당이 친박연대나 무소속 출신 당선자들을 집권당 프리미엄을 미끼로 끌어들이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번 총선 결과 한나라당 내에 박근혜씨를 중심으로 적지 않은 친박 세력도 자리를 잡았다. 이 대통령이 ‘총재’ 역할을 하는 데 훌륭한 협의의 동반자가 될 것이며, 이 또한 정치보다 앞서있다는 국민의 뜻이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잘 섬기기를 바란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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