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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햄릿 강의' 펴낸 원로 영문학자 여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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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햄릿 강의' 펴낸 원로 영문학자 여석기

입력
2008.04.08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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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희곡 <햄릿> 의 주인공인 이 덴마크 왕자는 텍스트 속에서 인간적 성장을 해나갑니다. 특히 마지막 5막 초입의 묘지 신(scene)에서 자신을 사로잡았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넘죠. 셰익스피어와 함께한 지 어느덧 66년, <햄릿> 을 보는 내 시각이 변했음을 느낍니다. 햄릿이 그랬듯, 나 또한 성장한 것이죠.”

<햄릿> 해설서인 <나의 햄릿 강의> (생각의나무 발행)를 펴낸 원로 영문학자 여석기(86)씨는 인터뷰 내내 겸양했다. 1942년 도쿄대 영문과에 입학해 셰익스피어 원전을 읽기 시작한 이래 평생 이 영국 극작가를 벗삼아 살아왔지만, 이번 책에 결론 삼아 인용한 문구는 “ <햄릿> 의 의미에 대한 영원하고도 깊게 자리잡은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다”(해럴드 젠킨스)는, 유보와 겸허의 표현이다.

고려대 영문과 교수(1953~87)로 재직하며 한국영어영문학회ㆍ한국셰익스피어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 영문학 1세대로서 돋보이는 활동을 펼쳤던 여씨는 그 자신의 이름을 딴 연극평론상이 제정돼 있을 만큼 60~80년대 연극비평가로도 일가를 이뤘다. 7일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서울 종로구 국제교류진흥회 사무실을 찾았다.

-오랜만에 저서를 내셨습니다.

“교수 시절 셰익스피어 강의를 담당하며 수없이 <햄릿> 강독을 했죠. 원문 독해 수준에 머물렀던 당시에 대한 아쉬움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새롭게 보이는 부분도 있어서 몇 개월 자료 준비해 작년 여름ㆍ가을 6개월간 집필했습니다. 작품을 한 번쯤 읽어본 학생들이 읽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독자도 읽을 수 있게끔 작품 대목을 많이 인용하고 우리말 번역도 붙였습니다.”

-셰익스피어 중 <햄릿> 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그런 셈이죠. 특별한 인연도 있습니다. 62년 남산드라마센터 개관작이 <햄릿> 이었는데, 유치진 선생 의뢰로 제가 새로 번역한 것을 대본으로 삼았죠. <햄릿> 을 통해 연극 무대와 인연을 맺은 겁니다. 내가 번역한 <햄릿> 이 영문학 텍스트가 아닌, 무대 대본이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죠. 여타 희곡 전공 학자들과 달리 저는 이후 텍스트 연구와 연극 비평을 병행했거든요.”

-책을 보면 1막부터 5막까지 꼼꼼히 작품을 해설하면서 필자의 입장보단 여러 사람의 견해를 두루 소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햄릿> 은 다들 잘 아는 이야기란 선입견이 있습니다. 물론 햄릿이 숙부에게 살해된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복수 비극’ 수준에서 보면 해설이 그리 힘들 게 없죠. 하지만 꼼꼼이 들여다보면 문제가 많은 작품입니다. 서로 다른 내용의 원판본(original edition)이 세 종류나 되고, 당시 공연 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는 대목도 여럿이죠. 무엇보다 다면적 해석을 일으키는 표현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애매모호한 작품을 쓴 셰익스피어는 훌륭한 겁니까.

“문제가 많다는 것과 모호하게 썼다는 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지적해둘 것은 <햄릿> 을 쓸 당시(1601년경) 셰익스피어의 필력은 절정이었습니다. 알려졌듯이 <햄릿> 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를 소재로 취했습니다. 한창 때의 천재 극작가가 원래 있던 소재로 작품을 썼을 땐 그저 흥행을 위한 것이 아닌, 고도의 문학적 재창조를 위한 것이었다고 보는 게 합당할 겁니다.”

-<햄릿> 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용인하신다 해도 맘에 안드는 해석도 있을 것 같습니다.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은 <햄릿> 의 주인공을 좋아했습니다. S. T. 콜리지 같은 경우는 “내게도 햄릿의 기미가 있다”며 아예 햄릿과 자기를 동일시했죠. 20세기에도 다르지 않아 폴란드 극작가 얀 코트는 햄릿을 ‘우리의 동시대인’이라고 불렀어요. 이처럼 <햄릿> 을 주인공 햄릿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보니 작품 해석이 성격비평에 머물거나 몰(沒)역사적이 되곤 합니다.”

-외신을 보면 셰익스피어 작품 진위 논란이 주기적으로 일던 데요.

“난 그런 얘기, 일축해 버려요. 논란의 이유는 우선 셰익스피어가 런던 연극계에 진출하기까지 행적에 대한 자료가 적어서 그렇습니다. 또 당대 극작가들이 옥스퍼드ㆍ케임브리지 출신의 지식인이었던 데 반해 셰익스피어는 학업을 도중에 그만둔 점이 호사가의 구미를 당기는 거죠.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1590년대 초부터 런던에서 작품을 썼고, 몇 해 안가 가장 활동적이고 뛰어난 활약을 펼친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책 말미에 <햄릿> 에 관한 다양한 연극ㆍ영화를 소개하신 것이 흥미롭습니다.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청소년기부터 영화를 좋아했습니다(그는 동서양 영화 걸작 33편에 대한 감상기 <씨네마니아> (1996)를 펴내기도 했다). 당시엔 영화 관련 학과가 없어서 대학에서 희곡을 전공했죠. 요즘 젊은 독자 중엔 영화 애호가가 많기에 책에 소개해 봤습니다. 그간 텍스트 위주로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던 영미 주류학계에서도 20~30년 전부터 공연비평을 연구 분야에 적극 편입시키고 있습니다.”

이훈 성기자 hs0213@hk.co.kr사진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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