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 4ㆍ9총선의 부재자투표가 어제 시작됐지만, 흥이 나지 않기는 여전히 마찬가지다. 헌정사로는 이번 선거가 1948년 5ㆍ10총선거 이후 60년 만에 맞는 중요한 선거다. 그런데 내용에서는 60년 만에 가장 우습고 맥 빠지는 선거가 되고 있다. 투표율도 역대 최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지 않아도 대통령 탄핵사태로 정치적 관심도가 높았던 2004년을 제외하고는 총선 투표율은 계속 낮아져왔다.
■ 역대 최저 투표율 기록할 듯
그런 추세인 데다 특별한 이슈도 없고 국민의 탈정치화, 정치 불신이 증대된 상황이다. 선거 무용론, 국회의원 불필요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의정치의 의미와 중요성을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지난해 대선부터 총선에 이르는 과정에서 드러난 정치권의 온갖 부정적 행태가 실망을 키웠기 때문이다.
시대별로 문제는 다 있었지만, 그래도 과거의 정치인들은 알이 굵어 보였고 뭔가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용이야 어떻든 정치라는 것은 국리민복을 위한 활동이라고 믿게 했으며, 정치인들은 꽤나 근엄하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허상과 가면이 이제는 다 벗겨졌다. 전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만은 아니지만, 그의 탈권위ㆍ파권위(破權威) 행태는 정치판과 국민 사이에 일정하게 쳐져 있던 차폐(遮閉)장치를 걷어내고 정치의 속살을 보고 만질 수 있게 해 주었다. 정치판의 비루한 밑천이 다 드러나게 했다. 그리고 자기는 떠나갔다.
그의 퇴장을 앞두고 벌어진 대선에서는 대선 특유의 시대정신 찾기라는 정치적 의미가 퇴색한 채 일방적인 승부가 벌어졌다. 구 여권세력은 어지러운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이어 여야 가릴 것 없이 개혁공천이라는 이름의 혼란스러운 코미디를 펼쳤다.
게다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선판에 다시 끼어들더니 이제는 다른 당에서 튕겨져 나온 사람들을 받아들이며 충청도 지역당을 키워가고 있다(그는 최근 어느 연설에서 자신이 대선에 두 번 출마했다고 말했다가 틀렸다고 알려주자 ‘아, 세 번 나왔던가?’ 하고 바로잡은 일도 있다). 지금 정치판에는 지켜지는 놈(Norm)도 없고 의리도, 피아(彼我)도 없다. 특히 같은 당 안에서의 분열과 헤쳐모여는 유례가 없을 정도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민이 정치인들을 믿고 의지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참 우스운 일이다.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떠다니는 사람들, 이른바 부동층이 역대 총선과 달리 투표일이 가까워올수록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이 국민의 마음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 떠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했다가 이제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에서 냉담 또는 비판자로 돌아선 사람들도 많다.
지금 정치판의 혼란과 이합집산을 새로운 정치질서와 정치패러다임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래 지속된 3김의 강고한 지배력과 장악력에서 벗어나 이제 탈권위와 실용의 시대로 접어든 한국정치의 상황은 새로운 정당 운영방식과 정치문법의 정착을 필요로 하고 있다.
■ 품격 있는 새 리더십 기르길
정치판은 언제나 대선과 총선을 통해 살아 남고 더 커나갈 사람이 결정된다. 도무지 어디에도 진지한 구석이 없는 것 같고 장난같기만 한 이번 선거는 그래서 우습기 짝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4ㆍ9총선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이 창출되기를 기대한다. 선거결과에 따라 여ㆍ야당의 역학구조가 확실하게 재편되고 종래의 대선주자들의 부침도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아울러 새로운 인물이 부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만 어떤 자질을 갖춘 어떤 인간형의 정치인이 부상하느냐가 중요한데, 무엇보다도 정치의 질과 품격을 높이고 회복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인물, 그래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인물이 부각돼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그러자면 선거판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쨌든 사람과 정당을 골라 투표를 하는 게 마땅한 일이다.
임철순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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