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추격자’가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살인마는 얼마 전 연쇄살인범으로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유영철이 모델이라고 한다.
영화에서 살인마가 하는 엽기적 행동은 겉으로 뚜렷한 이유나 동기를 찾을 수 없다. 평소 평범하기만 해 오히려 유약해 보이는 범인은 마치 다중인격장애자인 것처럼 한 순간 엽기적 살인마로 돌변한다.
또 며칠 전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했던 안양 여아 실종 사건 피의자도 주위 사람들에게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를 사람으로 보여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경찰에서는 피의자의 과거 정신병력을 찾아 본다든가, 정신 감정을 의뢰한다는 뉴스가 흘러 나온다.
이런 보도는 정신질환자가 위험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다. 과거에도 정신병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지 않았다.
중세에는 정신질환이 귀신이 씌어 생긴다고 하여 ‘마녀사냥’이라는 이름 하에 많은 사람을 죽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굿으로 병을 낫게 한다든가, 민간요법에 의지하려 하다가 결국 병이 악화된 뒤 병원을 찾는 경우를 종종 본다. 가족 중에 정신병 환자가 있으며 쉬쉬 하며 숨기려 한다.
일반적으로 비정상적이고 흉악한 사건을 저지르거나 엽기적 행동을 할 때 그 사람을 정신질환자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오해다. 일반인은 정신병을 정신분열병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정신분열병이 아니라 정신병질자(사이코패스)인 경우가 많다.
사이코패스는 싸움이나 폭력을 반복하고, 감정이 불안해 거짓말을 반복하고, 사리사욕과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학대하기도 하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면서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정신분열병과 거리가 멀다. 실제로 정신분열병 환자는 소심하고, 남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지내는 성향이 많다.
최근 정신분열병이라는 병명이 환자에게 낙인을 찍는 듯한 경향이 있어 이름을 바꾸려는 노력이 학회와 환자가족모임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신분열병은 영어 병명을 번역한 일본어에서 그대로 따온 것인데, 아마도 환자의 생각과 행동이 통일성이 없다는 면에서 그렇게 붙여진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몇 년 전 ‘통합실조증’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정신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사회ㆍ문화적으로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분별한 매스컴의 보도도 한 원인이다. 실제 정신병을 앓는 사람은 일반인보다 사건ㆍ사고를 일으키는 확률이 높지 않은데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사건을 정신병 환자의 소행으로 모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편견으로 음지에서 고통받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또 한번의 고통을 준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극히 일부 비정상적 의료기관의 의료행위를 보도하면서, 정신과 약이 환자의 인지 기능을 마비시키고 중독성이 강해 죽을 때까지 약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급속한 뇌 과학의 발전은 정신질환은 뇌 이상으로 생기며, 누구나 정신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영상매체의 발달로 뇌 지도가 어느 정도 그려지면서 정신병의 원인도 밝혀지고 있어 치료약 개발에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정신의학자들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약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본격적인 항정신병 약의 시초인 할로페리돌이 개발된 지 올해로 50년이 된다. 이 약은 정신병 치료사에 있어 획기적 사건이었고, 더 좋은 약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이제 정신병도 약으로 치료할 수 있으며, 정신병은 더 이상 숨길 병도 아니다. 다른 질병처럼 주위 사람과 상의하고 감기를 치료하듯 스스럼없이 병원도 다닐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바뀌어야 한다. 이는 의료인들이 더 노력하고 연구할 문제이지만, 의료시스템을 포함한 사회제도적 측면에서도 많은 배려와 보완이 필요하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