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작품이라도 전작의 그늘에 가려 있으면 범작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래서인지 이 공개된 뒤의 반응은 작품의 중량감에 비해 뜨듯미지근하다.
공수창 감독에게, 전작 <알포인트> (2004년)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벽인 것일까. 하지만 123분의 상영시간 동안 시계를 보지 않게 만드는 이 영화를 ‘자기복제품’으로 여기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인다. 비무장지대 최전방 경계초소(GPㆍGuard Post)에 울리는 섬뜩한 광시곡 이 3일 개봉한다. 알포인트>
영화의 뼈대는 튼실하다. 은폐와 억압, 트라우마의 공간인 군대를 다루는 감독의 솜씨가 여전하다. 아니 한층 깊어졌다고 해야 옳다. 평화가 넘쳐 흐르는 서울에서 차로 불과 50분이면 닿는 비무장지대. 이곳에 전 부대원이 몰살돼도 다음날 수색대가 도착한 다음에야 죽음이 알려지는 격리된 공간 GP가 있다.
배경이 갖는 아이러니와 압축된 긴장감은, 복잡한 장치 없이도 훌륭한 미스터리의 골격이 된다. 영화는 이 뼈대에 피비린내 나는 살점을 붙여 나간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GP506의 장병들이 몰살된 채 발견된다. 사건이 일어난 GP의 책임자는 육군참모총장의 아들 유정우 중위(조현재). 헌병대는 이 민감한 사건을 맡을 수사관으로 노성규 원사(천호진)를 선택한다.
총상에 짓이겨진 시신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는 베테랑 노 원사에게도 이번 사건은 만만치 않다. 실성한 채 발견된 유일한 생존자는 후송 도중 사망하고, 현장에서 발견된 비디오카메라는 그 병사가 유력한 용의자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발견된 또다른 생존자. 노 원사는 그가 GP장 유 중위라는 것을 알고 사건의 전모를 추궁한다. 그러나 그는 귀신에 쫓기듯 GP를 떠나려고 할 뿐이다.
폭우와 산사태는 모두를 GP 속에 가두고, 소대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공포 속으로 노 원사 일행도 빨려 들어간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을 거요.” 유 중위의 진술과 죽은 병사들의 일기를 통해, 공포의 실체에 한 발짝씩 다가간다.
영화는 골이 깊은 반전을 두어 차례 반복한다. 뼈대의 튼튼함 못지않게 반전의 논리적 긴밀성도 뛰어나다. 특수효과를 억제하고 세트의 사실성과 인간의 육질이 느껴지는 캐릭터의 질감만으로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
하지만 ‘무엇이, 왜’라는 의문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영화의 신선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전개방식의 기시감이 첫번째 이유고, 공포의 실체가 냉전체제의 메타포로 해석되는 진부함이 두 번째 원인이다.
<알포인트> 에서 병사들을 몰살시킨 존재는 원혼(怨魂)이었다. 침략전쟁의 부채의식이 배경(베트남)의 이국적 느낌과 맞물리면서, 이 영화는 새로운 차원의 미스터리로 각인됐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쓸데없는 정치ㆍ역사적 무게감에 미스터리의 순도가 희석되는 느낌이다. 알포인트>
예컨대 이런 대사들 때문. “눈을 벌겋게 뜨고 서로 못죽여 눈을 부라린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들 이상할 게 없어.” “좌우를, 남북을, 나와 남을 나누는 바이러스야… 우리를 괴물로 만든 건.”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영화의 곳곳에 가시처럼 박힌 메타포들이 영화를 보는 눈을 불편하게 만든다. 삐져나온 잉여의 의식이 치밀하게 계산된 영화의 구조와 불협화음을 이루기 때문이다. 여하튼, 65억원을 투입한 이 대형 미스터리가 <추격자> 의 뒤를 이어 영화시장의 흥행 선두를 지킬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18세 관람가. 추격자>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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