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떡인가, 진짜 개혁의 바람인가.’
2월 형의 뒤를 이어 국가평의회 의장직(대통령)에 오른 라울 카스트로의 쿠바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쿠바 정부는 지난달 31일 공산당 집권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고급호텔과 렌터카 시장을 일반에 개방했다. 지금까지는 외국계 회사 직원과 국영기업 핵심 간부 등 극소수만이 이 같은 ‘자본주의 상품’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래서 ‘관광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앞서 28일에는 일반인의 휴대전화 사용 금지 규정을 폐지했고, 쿠바 경제의 근간인 농업부문의 규제도 풀어 개인의 토지이용과 농작물 판매권한을 대폭 허용했다. 식료품의 80%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을 생산성 증대로 타개하기 위한 조치였다. 1일부터는 컴퓨터, TV, DVD 플레이어, 비디오 등 가전제품도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도록 했다. 의약품 역시 의사가 지정한 거주지역 약국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을 조만간 전국 모든 약국에서 구입이 가능해 진다.
일반인에게 허용된 이런 물품들은 사실 1959년 피델과 라울 두 형제가 혁명을 완수하고 정권을 잡은 당시 “모든 쿠바인들에게 돌려주겠다”고 공언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빈부격차를 조장할 수 있는, 그래서 정권을 흔들 수 있는 민감한 품목이라는 이유로 ‘실행되지 못한 공약’으로 남아 있었다.
물론 이런 품목의 접근이 허용됐다고 해서 쿠바 국민이 이를 실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데킬라를 마시며 소설을 썼다는 아바나 구시가지의 별 4개짜리 ‘암보스 문도스’ 호텔은 성수기 하룻밤 숙박료가 173달러이다. 쿠바 국민의 한달 평균 임금인 20달러의 9배에 달한다.
휴대전화도 국영기업 간부들이 사용료로 냈던 가격보다 24배가 넘는 요금을 미리 지불해야 한다. 더욱이 개방된 모든 품목은 쿠바 화폐인 페소가 아닌 외국인 전용으로 통용되는 태환화폐(CUC)로 결제해야 한다. 태환화폐에 접근할 수 있는 국민은 관광업계나 외국계 회사 종사자, 또는 미국에 친척이 있는 사람 등 전체의 60% 정도이다. 이 때문에 이런 조치들이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고, 쿠바 국민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특권계층에만 허용됐던 권리를 일반인으로까지 넓힌 것은 개방의 의지가 없다면 쉽지 않은 조치라는 점에서 값진 진전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소득불균형과 차별, 계급간 박탈감이 쉽게 노출될 수 있고 이는 사회적ㆍ경제적 평등을 생명으로 하는 공산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취임식 때 ‘불합리한 금지 규정’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정치적 개방까지는 기대하기 이르지만, 경제분야에서는 쿠바 국민을 ‘정상적인 국민’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이 실행되고 있는 듯 하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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