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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경영코드는 디자인] <3> 디자인이 곧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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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경영코드는 디자인] <3> 디자인이 곧 제품이다

입력
2008.04.0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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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P3 전문제조업체 레인콤의 디자인팀은 지난해 초 신제품 개발 컨셉트를 놓고 고심에 빠졌다. 난상 토론 끝에 내린 결론은 최근의 IT 제품들이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 착안, 패션 소품으로 접근해보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제품이 깜찍한 미키마우스 모양의 ‘M플레이어’. 지난해 7월 첫 선을 보인 M플레이어는 불과 8개월 새 40만대 이상 팔리는 ‘대박’을 터뜨렸다. 중ㆍ고교생들 사이에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음은 물론이다.

#2. 지난해 아일랜드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마이클 킬리언이 내놓은 자전거는 단숨에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가 평소 머리 속에서 꿈꾸었던 자전거로, 핸들과 바퀴가 자전거 몸체 옆에 달린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관심은 금세 식어버렸다. 실제 이 자전거를 타본 소비자들이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시장에서 외면당한 것이다. 디자이너가 소비자들의 욕구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을 고집할 경우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디자인은 곧 제품이다. 일반적으로 제품 하면 생산이나 마케팅을 떠올리지만, 실제 생산 단계 이전부터 어떤 제품을 만들겠다는 디자인 개념이 포함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디자이너나 최고경영자(CEO)가 시장 반응이나 상품에 대한 지식 없이 개인 취향에 따라 디자인을 택하는 경우. 이를테면 생수회사 CEO가 파란색을 싫어한다고 이유로 소비자 감성과는 무관하게 빨간색으로 생수통을 만든다면 시장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윤동 삼성전자 디자인스쿨(SADI) 상품디자인과 교수는 “전문성과 안목이 부족한 경영진이 최종 디자인을 결정할 경우 디자인 정체성을 훼손하기 쉽다”며 “그렇다고 디자이너가 시장 트렌드를 무시한다면 곧바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당한다”고 강조했다.

디자인이 상품 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떠오르면서 디자이너의 위상과 권한도 막강해지고 있다. 제품 개발 단계에서 디자이너의 재량권이 약할 경우 아무리 천재급 인재라도 디자인 혁신을 달성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의 전자업체 마쓰시타가 과거 디자인 결정권을 각 사업부장에게 부여하면서 그들의 기호에 맞춘 졸속 디자인들이 속출해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이와는 반대로 애플, 나이키, P&G, BMW, HP, 월풀 등은 디자이너를 부사장급으로 영입을 성공을 거뒀다.

BMW는 1990년대 말 고급 세단 경쟁에서 밀려 메르세데스-벤츠에 매각될 뻔했으나, 세계 자동차 업계의 명인으로 평가 받는 크리스 뱅글을 디자인 최고경영자(부사장급)로 영입하면서 단숨에 위기를 벗어났다.

그는 그룹 회장도 디자인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외부 압력을 철저히 차단한 뒤 소속 디자이너들의 토론을 통해 예술과 상업의 경계선에 있는 새로운 모델들을 개발했다. 당시 나온 작품들이 7시리즈, 5시리즈, 3시리즈, Z4 등이다. 이들 모델은 지금까지도 시장에서 상품성을 인정 받고 있다.

최근 유럽 시장에서 기아자동차의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올라간 것도 디자인 역량 강화 탓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아차는 지난해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에서 일하던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삼고초려 끝에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아직 그의 진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모델이 출시되진 않았으나, 유럽 시장에선 그가 몸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아차의 디자인과 제품 경쟁력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가 출시 직전 디자인에 개입한 ‘i30’의 경우 유럽 언론의 극찬을 여러 번 받았다.

영향력이 막강해진 디자인 CEO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은 상품성과 예술성의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다. 제품의 본질과 소비자들의 욕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매력적인 디자인에만 매달릴 경우 실용성 낮은 제품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일규 한국디자인진흥원장은 “디자인 CEO는 다른 분야의 인력을 포함시켜 상용화 및 기술력 구현 가능성, 일관된 정체성 등을 사전 점검해야 한다”며 “디자인은 생산, 마케팅, 판매 등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므로 기술적 한계나 원가 등 현실적인 문제와 타협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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