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北京) 올림픽 개막을 130일 앞둔 31일 그리스에서 점화된 성화가 베이징에 도착했다. 하지만 성화 도착의 기쁨은 잠시였다.
이날 오전 11시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열린 기념 행사는 삼엄한 경비 속에 진행돼 티베트(시짱ㆍ西藏 자치구) 소요 사태로 꽁꽁 얼어붙은 올림픽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행사는 톈안먼 광장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차기 국가주석으로 유력한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 등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후 주석의 참석은 중국에 심대한 의미를 지니는 올림픽을 반드시 성공적으로 치르겠다는 의지를 상징한다. 행사장에는 5,000여명이 참석했으나 대부분 당정 간부거나 동원된 학생이었고, 일반 시민은 거의 없었다.
시 부주석은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중국의 꿈은 이제 실현됐다”고 말했다. 시 부주석에게 이날 무대는 자신이 차기 대권 수임자임을 알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후 주석이 그리스에서 가져온 성화를 옮겨 광장 성화대에 점화하면서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후 주석이 “베이징 올림픽의 국제 성화 봉송을 개시한다”고 선언하자 오색 풍선이 광장 하늘을 날았고, 꽃가루가 휘날렸다. 이어 중국 육상 영웅 류샹(劉翔)이 톈안먼 광장 일대를 한바퀴 돌았다.
행사의 요란한 외관과 달리 분위기는 상당히 침울했다. 7년간 올림픽 준비에 전력해온 후 주석은 행사 내내 환하게 웃는 모습을 한번도 보여주지 못했다. 티베트 사태로 인한 근심 걱정이 떠나지 않는 듯했다. 전날 아테네 파나테니안 스타디움에서 열린 성화 인계식에서도 티베트 사태에 항의하는 시위자 21명이 체포됐다. 티베트 상황은 여전히 불안하다.
이런 분위기는 행사장 밖에서도 확인됐다. 행사 3일전부터 시작된 톈안먼 광장 통제가 이날 대폭 강화돼 경찰들이 광장으로 이어진 차도와 인도를 철저히 차단했다. 한 남성은 “신문을 보고 아침 일찍 톈안먼을 찾았는데…”라며 허탈해 했다. 행사장 인근에서 테러와 시위를 우려하는 경찰의 검문이 진행됐다. 방송은 돌발사태에 대비, 1분을 늦춰 중계하는 방식으로 현장을 전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성화는 1일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시작으로 5월 3일까지 19개국 21개 도시를 돈 뒤 올림픽 개막전날까지 중국 전역을 순회한다. ‘화해의 여정(和諧之旅)’으로 명명된 봉송길은 올림픽 역사상 가장 긴 130일, 13만7,000㎞에 달한다. 서울은 다음달 27일, 평양은 28일 성화 봉송이 진행된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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