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을 시작한 지 1시간쯤 됐을까. 5일부터 호암아트홀 무대에 오를 뮤지컬 <소리도둑> 의 런 스루(run-throughㆍ실제 공연처럼 진행하는 마지막 단계의 연습) 현장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쌓였던 오해가 풀리면서 부둥켜 안고 우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스태프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소리도둑>
벌써 십여 차례도 넘게 이뤄졌을 총 리허설인데도 처음인양 눈물을 훔치는 스태프가 하나 둘씩 늘었다. “저희는 매일 울어요.” 울음바다가 된 연습실 광경에 의아해 하는 기자에게 한 제작진이 건넨 말이다.
■ 내 아이를 위한 뮤지컬
유명 가수였던 아빠를 잃고 충격으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된 소녀 아침이가 아빠의 노래를 들은 후 노래로 대화를 하면서 점차 목소리를 찾아간다는 내용의 뮤지컬 <소리도둑> 은 올 상반기 창작 뮤지컬 중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힌다. 소리도둑>
오디션을 통해 주인공 아침이로 선발된 박도연(11) 심재영(12) 박세현(10) 세 명의 아역 배우들이 5개월간의 연기 트레이닝을 받는 등 3년 여의 사전 제작 기간을 거친 게 주된 이유지만 한국 뮤지컬계의 대표 배우 남경주 최정원 콤비를 4년 여 만에 한 무대에 세운 작품인 까닭이기도 하다.
연습 현장에서 본 두 명배우의 탁월한 연기 호흡은 여전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의 작품 선택 동기. 두 사람 모두 “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뮤지컬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극작과 연출을 맡은 조광화씨도 “거칠고 못된 작품을 해오다, 내 딸이 행복해 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라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소리도둑> 은 그만큼 눈물과 감동을 주는 가족 뮤지컬이다. 극 종반부에는 인경(최정원)과 아침, 인경과 필네, 최원장과 치린이 등 여러 인물 관계의 오해가 한꺼번에 풀리면서 눈물샘을 강하게 자극한다. 소리도둑>
특히 어린 배우들이 선보이는 절절한 눈물 연기는 이 작품만의 차별 요소다. 말하지 못하는 아이로 설정돼 있다가 극 시작 후 30여분께부터 입을 떼는 아침이는 5개월여의 연기 훈련 덕분인지 아빠와 관련된 에피소드만 나오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 영화 <에이미> VS 뮤지컬 <소리도둑>소리도둑> 에이미>
뮤지컬 <소리도둑> 은 알려진 대로 1998년 호주 여성 감독 나디아 테스의 영화 <에이미> 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영화와 뮤지컬을 비교해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에이미> 소리도둑>
뮤지컬이 공연되는 호암아트홀에서 99년에 상영된 영화 <에이미> 는 록가수 아버지가 감전사로 죽은 뒤 말을 잃어버린 8살 소녀 에이미의 이야기다. 에이미>
아동복지국 사회복지 공무원에게 시달리던 에이미가 엄마와 함께 찾게 된 빈민가인 머서가는 <소리도둑> 에서 전라도 산골로, 무명의 기타리스트 로버트는 한국 뮤지컬계의 자화상 같은 모습으로 설정된 실패한 뮤지컬 작곡가 유준(남경주)으로 바뀌었다. 자동차 휠캡만 수집하는 꼬마 잭은 말더듬이 청년 치린이라는 새로운 인물로 승화됐다. 소리도둑>
영화 개봉 당시 작품성은 있으나 다소 지루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뮤지컬에는 1인 다역을 소화하는 ‘멀티 우먼’ 등 웃음 코드가 곳곳에 녹아 있다.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로 실력을 인정 받은 김혜성 작곡가의 노래도 꽤 인상적이다. 오!> 김종욱>
아침이가 처음 관객에게 목소리를 들려주는 ‘안녕 아가’, 치린과 유준이 아침이가 노래를 할 수 있음을 알게 되는 ‘아침이의 노래’, 아침이가 목소리를 찾는 클라이맥스에서 나오는 ‘소리도둑’ 등의 노래가 귀에 꽂힌다. 손전등이나 호롱불을 활용한 아기자기한 무대장치의 등장도 뮤지컬이기에 빛나는 독특한 장면이다.
결국 일종의 환영인 ‘소리도둑’에게 목소리를 빼앗겼던 아침이의 노래는 단지 말을 되찾는 과정이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에게 소통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소리다. 뮤지컬 <소리도둑> 은 관객과의 소통에도 성공할 수 있을까. 공연은 다음달 25일까지. 1577-5266 소리도둑>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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