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의 모임인 교과서포럼이 지난주 발간한 <대안교과서- 한국근ㆍ현대사> 에 대한 역사학계의 본격평가가 시작됐다. 본지는 중견 역사학자 3명에게 구한말, 식민지시기, 해방후의 현대사 등 시기별로 <대안교과서> 의 학술적 평가를 부탁했다. 이들 역사학자들은 다소간 입장 차이가 있었으나 역사서술의 편향성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냈다. 대안교과서> 대안교과서->
김도형(55)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좌파 민족주의에 의한 것으로 규정하고 이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일제시대를 긍정적으로 보면서 그 지배하에서 이루어진 경제 발전을 부각시키고, 친일파를 활용하여 단독정부를 수립한 이승만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해 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며 “한국인이 과연 무엇을 추구하고 살았는지, 그리고 역사 속의 지도자들이 한국인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고 했는지를 파악하지 못한 채 몰역사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신철(43)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 연구교수는 이 책을 “대안이 아닌 ‘대안교과서’”라고 지적하며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이들의 퇴행적 역사의식을 비판했다. 지금까지의 역사교육이 일본중심의 질서와 그에 대한 민족적 저항만을 중시한, 일종의 정치중심주의라며 비판하고 있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는 “근대역사가 어찌 개인의 사회ㆍ경제적 처지 개선에 대한 노력 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정치적 자유와 국가의 독립 역시 그에 못 지 않게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정재정(57)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대안교과서의 저자들이 현행 교과서를 좌파민족주의에 경도돼있다고 평가한다면, 이 교과서는 우파국제주의라고 볼 수 있으며 현행 교과서가 ‘한민족 중심’ 역사관에 물들어 있다면 대안 교과서는 ‘대한민국 중심의 내셔널리즘’에 물들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한국 근현대의 역사상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체계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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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한말 부분
<대안교과서> 에서는 철저하게 개화파 중심, 반민중적 시각에서 근대사를 서술하고 있다. 1894년 이전은 김옥균을 중심으로, 그 이후에는 이승만을 중심축으로 설정하였다. 근대사를 보는 역사학계의 연구가 다양하므로, 현행 국사교과서의 입장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대안교과서>
갑신정변 평가의 경우 이 책에서는 김옥균 등을 “근대화를 추구한 선각자들로 적극 평가”해야 한다고 하였다. 개화파가 근대화의 선각자라는 것을 부정하는 연구자는 없다. 다만 서재필도 지적하였듯이,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외세에 기대었다는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민씨 세력과 민 왕후에 대해서는 개화파의 적대 세력이었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뒷부분에서 동도서기(東道西器)론을 조선왕조의 이념으로 서술하고 있듯, 당시의 핵심적인 정치 세력인 민씨 세력 역시 근대적인 개혁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는 민씨 세력도 평가해야 할 것이다.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극히 소수인 연구자의 견해에 따라 동학농민봉기라고 규정하고, 유교적인 근왕주의 운동으로 재인식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이 운동을 역사적 흐름 속에서 파악하지 못한 단편적인 인식이다.
의병을 부정적으로 기술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대한제국을 평가한 부분에서는 굳이 소수학자들이 주장하는 근대국가론을 반박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한제국에서 추진한 광무개혁은 실체가 있으며 또한 황권을 중심으로 개혁하면서 농민층을 수탈했던 점도 명확하다.
한편 당시의 국제관계를 조공체제에서 접근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불평등조약 체제로 설명하면서 유독 미국과의 조약에 대해서만 이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미국과의 맺은 치외법권, 최혜국대우 등도 분명 불평등한 것이었다.
김도형ㆍ연세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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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식민지 부분
현행 교과서가 ‘운동론적 시각’에서 장절(章節)을 구성하고 있는 것에 비해 <대안 교과서> 는 ‘발전론적 시각’에서 장절을 구성하고 있다. 대안>
현행 교과서가 일제통치시기를 한민족이 일제의 수탈과 동화 정책 아래 민족말살의 수난을 당함에 따라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줄기차게 항일독립투쟁을 전개했다고 보는 반면, 이 책은 이 기간 동안 한국인이 근대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해 근대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을 축적해갔다고 보고있다.
일제의 지배가 ‘폭력적 억압체제’라는 전제에 동의하면서도 이 책은 ‘한국인의 성장’과 ‘사회적 능력의 축적’을 뼈대로 삼고 있다. 경성방직주식회사를 다루면서도 “지주자본이 산업자본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한국인의 대표 상공업자”로 평가하고 있다.
현행 교과서는 이들을 ‘전쟁 협력 행위를 한 친일 예속 자본주의의 전형’ 으로 평가한다. 또한 최남선, 이광수, 홍난파 등의 행적을 친일파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고 업적 위주로 크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최근의 역사연구의 방법론을 반영하고 있지만, 역사적 사건을 결과중심으로만 기술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점이 문제될 만하다.
가령 해외 이주민들의 수난상에 대해 간도참변, 간토대지진과 학살, 중앙아시아 이주 등의 3개 사건으로 잘 요약하고 있지만, 왜 민중들이 만주나 연해주로 이주했는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민중들의 생활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빚어질 수 밖에 없었다고 충실히 배경설명을 하고 있는 현행 교과서와 대조적이다.
또한 일제의 지배정책을 기술함에 있어 실증주의를 중시한다는 명목으로 통계를 많이 인용하고 있지만, 통계가 포착하지 못하는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현행 교과서가 일기 등을 인용해 통계 이면의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과 달리 최근 학문적 성과가 상당히 축적된 진행된 구술사 등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
정재정ㆍ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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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 부분
이 책이 대한민국의 건국에 특별한 의의를 부여하는 이유는 공산주의를 선택한 북한보다 월등한 경제성장을 이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역사를 물질만능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친일반민족문제보다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근대 문명을 배우고 익혔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해방 후의 역사에서는 선과 악이 더욱 선명해진다. 미군의 점령과 군정의 실시는 “자유, 인권, 시장 등 인류 보편의 가치가 미국군을 따라 한반도에 상륙한 북방한계”로 해석된다.
남한 내에서 벌어진 4·3사건이나 여순사건 등을 북한의 노선에 따른 공산주의 반란 만으로 설명하는 사실의 오류는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4·19혁명의 가치 실현보다는 “흐트러진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지체된 근대화 과제를 강력히 추진할 새로운 리더십을 갖춘” 군부에 의한 ‘역사적 역할’이 강조된다.
산업화 과정의 이농에 의해 형성된 빈민촌의 철거에 대한 저항을 “물리적으로 저항하거나 국ㆍ공유지의 유리한 불하를 주장하는 빈민촌의 집단행동”으로 폄하하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으로 해석하는 대목에 이르면 경제성장의 도구로 전락한 보통사람들의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엘리트주의적 역사인식은 전태일의 분신이 1970년대 이후 노동운동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서술로 은폐되기엔 너무나 적나라하다. 대안교과서를 표방하는 이 책은 보통사람의 역사를 표방하지만, 보통사람은 역사의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에 일제시기 이래 서구근대를 선두에서 받아들인 엘리트들의 역할은 크게 강조되었다.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국가폭력의 문제는 심각하게 다루지 않고, 시민운동에 대한 긍정보다는 비판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결과와 목표만을 중시하고 과정엔 소홀한 결과이다.
이신철ㆍ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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