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부산 남구로 가는 길은 일요일인데다 가랑비까지 흩날려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러나 남구 우암1동 대진아파트 입구는 달랐다. 동네 공터에 5일장이 열리고 있었고 그곳엔 상인과 주민, 선거운동원 등 수백여명이 뒤섞여 열기가 후끈했다.
“이번엔 7번입니데이~.” “박근혜 밀었다고 공천 안 준다는 게 말이 됩니까.”
무소속 김무성 후보는 거리에서 만난 유권자와 일일이 악수를 나누면서 녹음기처럼 이 말을 되풀이했다. 주민들의 반응은 좋았다.
“김 의원님, 이번에 고생 많으시지예.” “걱정마이소, 꼭 안 되겠습니꺼.”
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잠시 멈춰 아는 체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김 후보도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었다. 눈물을 훔치며 탈당 선언을 할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1시간 뒤 김 후보가 떠난 자리에 한나라당 정태윤 후보가 찾아왔다. ‘3선 의원, 김무성’과는 인지도에서 차이가 있었다. 김 후보가 그를 알아본 유권자를 맞이하는 식이라면 정 후보는 먼저 유권자에게 달려가야 했다. 대신 정 후보는 필사적이었다.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쫓아가다시피 하며 행인들의 손을 붙잡았다.
“한나라당 한번 도와주이소.” “열심히 하겠습니다.”
무소속 열풍이 인다고 해도 이곳이 한나라당 텃밭인 것도 분명했다. 비록 낯선 인물이어도 ‘기호 2번 한나라당 후보’라는 말에 반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선거 양상은 이처럼 김 후보가 ‘박근혜 정서’를 자극하면 정 후보는 “여러분이 뽑은 이명박 대통령에 힘을 실어달라”며 맞불을 놓는 식이다. 이날 유세도 내내 그랬다.
오후 우암동 자유아파트 경로당을 찾은 김 후보는 “이번에 공천에서 떨어졌습니다”라는 첫 소개와 함께 말을 이어나갔다. “이명박, 박근혜가 손잡고 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박근혜는 깨끗이 승복했는데, 이명박 뒤에 못된 놈이 몇 명 있습니다. 그런 놈들 때문에….” 간결하고 명쾌한 설명에 경로당 노인들은 금세 고객을 끄덕였다.
감만1동 시장 앞 거리유세에서 그는 “감정은 묻어두고 반드시 한나라당에 돌아가 이명박 대통령을 잘 모실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나라당 지지표를 의식한 언급이다. 그의 복당론에 거부감을 느낄 유권자는 많지 않아 보였다. 유세를 지켜보던 김연순(44ㆍ여)씨는 “당에 있을 때나 무소속으로 나올 때나 달라진 게 없다”고 평했다.
반면 정 후보는 우암1동 거리유세에서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너무 휘청거리고 있다”며 위기론을 꺼내 들었다.
김 후보의 ‘박근혜 마케팅’에 대해서도 “친박, 친이라는 구분은 정치인들이 밥그릇 싸움할 때나 중요한 것” “김무성 후보가 당선되면 사사건건 대통령과 대립하고 권력투쟁에 몰두할 것” “당헌ㆍ당규상 복당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등의 논리로 비판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설이었다.
반응은 엇갈렸다. 김모(48ㆍ여)씨는 “똑똑하기는 정 후보가 더 나은 것 같다”고 했고, 건축업을 하는 김모(47)씨는 “뭐하던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다”고 별로 점수를 주지 않았다.
부산 남을은 ‘박풍(朴風)’의 진원지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떨어진 뒤 무소속으로 출마한 친박근혜계 좌장 김무성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15~25% 격차로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은 박풍의 위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판이 끝났다고 예단할 순 없다. 부산 남구는 지난 대선 때 58%의 지지율을 기록한 한나라당의 텃밭이기 때문이다.
김 후보는 “과거 3번의 선거보다 분위기가 더 좋다”고 승리를 자신하고 있지만, 정 후보는 “선거 막판에 한나라당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물러서지 않는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31일 지원유세를 하고 간 것도 막판 한나라당 쏠림현상을 노린 것이다.
2002년 대선 때 김 후보가 당시 이회창 후보의 비서실장을, 정 후보가 비서실 부실장 겸 사이버위원장을 맡아 호흡을 맞췄으나 이제는 적이 된 두 사람. 그래서 그들의 승부는 더욱 시선을 모으고 있다.
두 후보 외에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을 지낸 무소속 박재호 후보와 여성운동가인 평화통일가정당 김인숙 후보도 출마, 고군분투하고 있다.
부산=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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