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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경영 코드는 디자인] <2> 1명이 1만명을 먹여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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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경영 코드는 디자인] <2> 1명이 1만명을 먹여 살린다

입력
2008.03.3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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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패션 브랜드 푸마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공공연히 파산설에 휩싸일 만큼 경영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1998년 독일 패션 디자이너 질 샌더와 손을 잡은 이후 7년간 두 자릿수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푸마는 질 샌더와의 협업을 통해 스포츠 용품 브랜드에서 패션 브랜드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2. 명품 브랜드 구찌도 오너 형제간 재산 분쟁과 방만한 경영으로 파산직전까지 몰렸지만, 94년 톰 포드를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하면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톰 포드는 구찌의 고전미에 섹시함과 품격을 더하면서 명품 브랜드의 명성을 되찾았고, 회사 주가도 20달러에서 100달러로 5배 이상 치솟았다.

이상의 두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천재급 디자이너가 망해가는 회사를 살려내고 매출을 끌어올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맥킨토시로 유명한 미국의 애플은 97년까지 IBM 컴퓨터(PC)에 밀려 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고사 일보 직전이었다. 델의 창업자인 마이클 델이 “애플은 문을 닫고 주주들에게 돈을 돌려 주라”고 쓴 소리를 했을 정도다. 하지만 98년 ‘스티브 잡스 감독, 조나단 아이비 연출’의 반전 드라마가 시작됐다.

그 해 출시된 애플의 PC ‘아이맥’은 6주만에 27만8,000대가 팔려 나갔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채택한 ‘아이팟’은 한국 기업들의 독무대였던 MP3플레이어 시장을 순식간에 점령했다. 그 덕에 애플의 매출은 2000년 80억달러에서 2006년 193억달러로 불과 6년 새 2배 이상 급증했다.

그 숨은 주역이 바로 수석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다. 그의 작품 ‘아이맥’은 애플 내부에서조차 38가지 이유를 들어 개발을 반대했을 정도로 디자인이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경영 일선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그의 천재성과 파격에 힘을 더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도 디자이너의 덕을 톡톡히 봤다. 루이비통은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여행용 가방 정도가 명품으로 인정 받았다. 하지만 세계적인 패션상 CFDA를 7회나 수상한 천재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를 영입하면서 고전적 이미지를 벗어나 고급 패션 브랜드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했다. 그가 합류한 이후 루이비통은 모 그룹 LVMH 전체 매출의 50%을 점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국내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LG전자의 ‘초콜릿폰’과 ‘샤인폰’이 선풍적 인기를 끈 데에는 차광희 MC디자인연구소 상무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구글, 야후 등 굴지의 인터넷 기업들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있는 NHN은 직원 3,000명 중 12%가 디자이너일 정도로 디자인 역량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창의성을 갖춘 천재급 디자이너가 기업 매출은 물론, 고용까지 좌우하는 마이더스의 손이라는 사실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가 2005~2007년 디자인기술 개발 사업에 참여한 650개 기업의 성과를 분석한 결과, 디자인기술 개발을 통해 업체당 평균 매출액은 58.1%, 수출액은 89.4%나 늘어났다. 또 고용 수준도 디자인기술 개발 직전 업체당 평균 44.7명에서 개발 이후 59.2명으로 증가했다.

하 송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디자인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날로 커지면서 디자이너 1명이 1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현실화하고 있다”며 “잠재력 있고 천재성을 갖춘 디자이너 확보가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떠올랐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기업들은 디자이너의 외부 영입에만 열을 올릴 뿐 자체 육성에는 소홀한 편이다. 이일규 한국디자인진흥원장은 “이제 무분별한 디자이너 영입보다는 내부 육성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하는 시점”이라며 “그래야만 외부와의 적절한 협업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삼성전자의 디자인스쿨 SADI와 LG전자의 슈퍼 디자이너 제도가 디자인 육성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93년 디자인 영재 후원 프로그램인 ‘디자인 멤버십’을 운용한 데 이어 95년 자체 디자인스쿨을 설립했고, LG전자는 2006년부터 잠재력 있는 디자이너를 슈퍼 디자이너로 선정해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성과도 점차 나타나고 있다. SADI 출신들이 디자인한 삼성전자 휴대폰 ‘T-100’은 2000년부터 최근까지 1,000만대 이상 팔렸고, 지난해 세계적 디자인상인 RED-DOT에서 7건의 상을 받았다. 원대연 SADI 학장은 “이제 뛰어난 디자이너 확보는 기업 경쟁력 강화의 필수 요소가 됐다”며 “특히 내부 육성한 디자이너는 기업의 디자인 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안형영 기자 truest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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