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죽음이 운위되던 1970년대 말. 추상표현주의의 시대가 저물고 뒤이어 등장한 팝아트의 냉소주의로 민심이 흉흉하던 때, 거침없는 붓질과 현란한 색채로 무장한 젊은 작가가 미국 미술계에 복음처럼 등장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회화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으나 오히려 그들이 고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줄리안 슈나벨(57).
“빈사상태에 있던 회화를 혼자만의 힘으로 구원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는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의 기수 슈나벨의 국내 첫 개인전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다음달 20일까지 열린다. 슈나벨이 직접 추린 시기별 대표작 30여점을 모아 중국 베이징과 홍콩, 상하이를 거쳐 서울에 도착한 순회전이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 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와 올해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세계적 영화감독이자 80년대 미국 뉴 페인팅(New Painting)의 대표주자인 슈나벨을 이메일로 만났다. 잠수종과>
_캔버스 대신 벨벳, 동물가죽, 타르를 칠한 천, 돛베 같은 다양한 바탕에 접시조각을 붙이거나 물감을 쏟고 문지르는 당신의 그림은 ‘뉴페인팅’이라고 불린다. 회화 위기론이 팽배하던 시기, ‘뉴 페인팅’이라는 돌파구를 찾기까지의 과정을 들려달라.
“회화의 역사를 바라보고, 전통과 사상을 받아들였으며, 접시회화로 그에 화답했다. 내 자신이 회화에서 무엇을 말해야 하냐에 대해 생각했다. 회화의 죽음은 더 이상 이슈가 아니었으며, 다만 이전의 회화에 대한 연장선으로서 작업의 기초가 됐다.”
_당신의 작품은 추상인가 구상인가, 그 사이의 어디쯤인가.
“내 모든 작품은 추상이다. 이미지든, 인식 가능한 오브제든 차이가 없다. 물성(objectness)을 해독함으로써 그것이 갖추고 있는 형식적인 요소에 답한다. 비전통적인 재료들의 사용도 같은 문제다. 텍스처나 재료 등 작품의 도구라는 것은 그 자체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무엇이 재료인가와 그것으로 작가인 내가 무엇을 하느냐를 통합하는 것이, 예술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_화가, 영화감독, 사진작가, 조각가 등 타이틀이 여럿이다. 하나의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천형이 내려진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술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회화, 사진, 조각, 영화 등 서로 다른 장르에 걸쳐 작업하지만, 첫 번째 정체성을 화가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작업하는 모든 방식과 매체는 표현을 위한 하나의 방법들이다. 말하고 싶은 것을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의 흥미를 주는 매개물을 통해 작업한다. 영화 역시, 화가로서 나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예술은 많은 것을 의미하며 세상을 보는 방법이다. 항상 어려서부터 예술가가 되길 원했다. 인생은 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최선의 코스를 제공해준다고 말하고 싶다.” _항상 실화에 기초해 고통받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
“늘 삶의 자유를 찾기 위해 예술, 삶, 죽음에 직면해왔던 실존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의 소재로 선택했다. 이러한 소재들은 나의 모든 작품을 통해 나타난다.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인생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매우 흥미롭다. 존재와 어떻게 타협할지에 대해 늘 생각한다. 나의 예술은 삶과 똑같다.”
_그래피티 아티스트인 바스키아의 친구이자 <바스키아> 라는 영화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바스키아는 요절로 인해 완결형의 신화가 됐지만, 당신은 살아있음으로 인해 최종적인 평가를 유보해야 하는, 여전한 진행형의 작가로 남아있다. 대조할 만한 흥미로운 아티스트의 두 유형을 바스키아와 당신이 보여주고 있는데,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나. 바스키아>
“굉장히 좋은 질문이지만 너무 개인적인 거라 대답하기 어렵다. 말할 수 있는 건 그가 매우 젊었을 때 삶을 마감했다는 것, 그리고 당대에 매우 중요한 아티스트였다는 점이다. 현대 미술의 역사에 아주 중요한 업적을 남겼던 인물이며, 그 시대에 아주 적절히 반응했던 예술가였다. 매우 복잡한 사람이었던 바스키아에게 나는 아주 좋은 친구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도 바스키아의 명성을 흡수, 삶의 모든 단계에서 앞으로 나아갈, 다른 아티스트나 일반인들처럼 성숙해질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_서핑 마니아로 유명한데, 서핑을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자유, 자기 자신보다 더 큰 힘으로 파도를 지배하는 것에 대한 은유, 아름다움. 그리고 파도가 만들어내는 형상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