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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뭉칫돈 쥔 어르신 마음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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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뭉칫돈 쥔 어르신 마음을 잡아라"

입력
2008.03.3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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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석연(65) 할아버지는 작년 봄 ‘생애 최고의 순간’을 누렸다. 그는 나무망치로 공을 치는 게이트볼 경기의 간판선수. 그가 속한 ‘도봉클럽’(회원 150명)은 지난해 9,000여 팀이 참가한 전국 어르신 게이트볼대회에서 우승(상금 300만원)했다. 대회 주최는 흔히 예상하듯 체육단체나 정부 유관기관이 아닌 은행(국민은행)이었다. 국민은행은 어르신들의 호응이 좋자, 다음달 2회 대회를 연다.

2연패를 노리며 연습에 몰두하던 장 할아버지는 “돈 되는 일만 하는 은행이 대회도 열고 상금도 후하게 주는 등 모처럼 노인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 같다”며 “대회가 끝난 뒤 다른 은행에 묵혔던 목돈을 국민은행에 옮기는 팀원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 홍모(75) 할아버지는 복부비만(허리 38인치)이 걱정될 때마다 거래은행(신한은행)에 전화한다. 자신의 식생활에 맞는 조언과 운동량 확인 등 병원보다 훨씬 살가운 조언을 해주기 때문이다. “병원엔 직접 가야 하는데, 은행은 전화만 하면 꼼꼼한 상담을 무료로 해줘요. 처음엔 놀랐죠. 지금은 고마워요.” 홍 할아버지는 훌라후프를 하라는 조언을 따를 참이다.

시중은행이 어르신 모시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저 이자 몇 퍼센트(%) 더 얹어주고, 수수료 몇 푼 깎아주는 수준이 아니다. 노인들이 정말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는 ‘밀착형 실버 마케팅(Silver Marketing)’으로 진화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노인 문화활동 지원, 시시콜콜한 몸의 변화까지 점검해주는 가족 주치의(건강관리) 서비스, 불의의 사고를 대비한 무료 보험가입, 노후 여행 서비스 등이다. 물론 금리 수준이나 금융 관련 부가서비스도 다른 상품에 비해 유리하다.

3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은행들의 실버 마케팅은 각종 금융 및 제휴서비스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는 전략으로 진행되고 있다. ‘WINE(Well Integrated New Elder)세대’(국민은행), ‘탑스시니어플랜’(신한은행), ‘웰스앤헬스’(우리은행)는 각 은행을 대표하는 실버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나은행도 지난해 은퇴준비 포럼, 은퇴상담 전문솔루션 구축, 무료 노후컨설팅을 진행해 호평을 받았다.

밀착형 실버 마케팅의 확산은 무엇보다 노인 고객이 지니는 금융거래의 특성 때문이다. 사실 젊은 고객은 거래실적보다 수익률을 쫓는 불나방으로 변한 지 오래다. 지난해 펀드 열풍이 일으킨 ‘머니 무브’(Money Move) 현상은 은행들에게 고객의 배신으로 여겨질 법하다. 반면 어르신들은 돈을 불리기보다 지키려는 성향이 강해 은행 적금과 예금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

더구나 노인들은 대개 목돈을 쥐고 있다. 국민은행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고객의 은행 거래 비중은 10.8%에 불과했지만, 예금 비중(21%)은 상대적으로 높아 다른 연령에 비해 자산 축적이 돼있음을 알 수 있다. 노인들은 또 일단 거래를 트기만 하면 은행을 바꾸지 않는 성향도 강하다.

뭉칫돈을 쥔 충성스런 고객 확보(성장동력) 외에 은행의 속셈은 또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어르신들은 사회에서 소외 받는 측면이 있는데, 은행이 앞장서 노인들의 여가를 챙기고 바라는 부분을 살뜰히 채워주면 전반적인 은행의 브랜드 이미지가 좋아지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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