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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구림마을, 돌담길 따라 늘어선 정자들엔 2200년숨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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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구림마을, 돌담길 따라 늘어선 정자들엔 2200년숨결이…

입력
2008.03.2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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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여년 한 자리를 지키고 살아온 마을이 있다. 흐드러진 벚꽃 드리운 황토빛 돌담길에 오랜 역사의 자락 길게 늘어뜨린 고즈넉한 마을이 있다.

월출산 서편의 전남 영암 구림마을은 가마터 등 선사시대의 유물과 조선시대의 마을길, 그리고 500년 전통의 대동계가 이어져오는 전통마을이다. 일본에 문물을 전한 왕인 박사와 풍수지리의 시조 도선 국사, 고려 태조 왕건의 책사였던 최지몽 등 수많은 역사적 인물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구림마을은 안동 하회마을이나 순천 낙안읍성민속마을과 달리 잘 정돈된 민속촌은 아니다. 중간에 양옥집이 들어섰는가 하면 일본식 목조주택도 수두룩하다. 골목마다 늘어선 전봇대와 치렁치렁한 전깃줄도 시선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냥 눈에 보이는 것들일 뿐. 정자 하나, 돌담 하나에 담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새록새록 솟아나는 마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마을의 중심은 굵은 노송이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회사정. 구림마을 대동계의 집회소로 그 많던 향약이 다 사라진 오늘날에도 명맥을 유지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어사 박문수의 일화가 전해진다. 박문수가 거지 꼴로 찾아와 대뜸 회사정에 올라와서는 손님 대접을 요구하자, 계원들이 그를 무력으로 쫓아냈다.

그 와중에 마패가 떨어져 신분이 드러나자 계원들이 크게 반성을 하고 사죄의 뜻으로 어사가 앉았던 자리에서는 마루 조각을 떼어냈다고 한다.

마을 한쪽에는 구림마을이라는 이름을 낳게 한 바위, 국사암이 있다. 한 여인이 겨울에 빨래를 하다 물에 떠내려온 푸른 오이를 건져 먹고 임신을 했다. 아들을 낳았지만, 처녀의 부모는 아이를 내다버렸다. 처녀가 여러 날이 지나 그 자리에 가 보니 비둘기들이 아이를 감싸고 먹이를 물어다 주며 보호하고 있었다. 그가 바로 나중의 도선 국사다.

그가 버려졌던 바위가 국사암이고, 비둘기 구(鳩) 자를 써서 구림이라는 마을 이름이 지어졌다. 국사암에는 주먹만한 구멍들이 여럿 파여있다. 아낙네들이 도선 국사 같은 영특한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린 흔적이다.

405년 왕인 박사가 떼배를 타고 일본으로 출항한 상대포도 지금껏 남아있다. 당시에는 국제무역항이던 포구가 지금은 작은 저수지에 가두어져 있다. 일제 때부터 주변 바다를 막아 농토로 개간한 때문이다. 작은 못이지만 그곳에 저무는 저녁 노을은 여전히 찬란하다.

마을 곳곳에 간죽정, 죽정서원, 죽림정, 회사정, 호은정, 육우당 등 한눈에 봐도 저마다 품격이 느껴지는 정자들이 있다. 그 정자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정겨운 돌담길을 느긋하게 걷는 여정이 이 마을을 제대로 구경하는 방법이다.

허름한 이발관에도 기웃거리고, 떡하니 마을의 큰길을 가로막고 선 중앙매점에 들러 주전부리도 챙기고, 양철로 담을 두른 옛 방앗간에서 귀 기울이며 추억의 방아를 찧어본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문득 집이 그리워지는 시간, 이 마을 고샅길에서 돌담길 바닥에 깔리는 밥 짓는 냄새 맡으며 지긋이 눈을 감으면, 지금 서 있는 곳이 바로 꿈에 그리던 고향 그곳이다.

고향집 황토방 같은 뜨끈한 구들에서 몸을 지지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구림마을 사람들은 민박 등 다양한 전통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500년 전통의 대동계사를 비롯해 역사가 깃든 전통 가옥에서도 민박을 하며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짚신 만들기, 달걀꾸러미 만들기, 종이공예, 화전 부치기 등 민박별로 독특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남도민박 구림마을(http://ygurim.namdominbak.go.kr/).

마을 중심에 자리한 영암도기문화센터는 통일신라시대의 구림도기를 재현하기 위해 마련된 곳이다. 폐교된 중학교 자리에 만들어진 이곳에서는 물레 돌리기, 핸드페인팅 등 도자 빚기 체험이 가능하다.

영암=글 사진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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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암 왕인문화축제

영암읍에서 구림마을로 가는 길은 100리 벚꽃길이다. 이 길 가득 벚꽃이 흐드러지는 4월 5일부터 8일까지 왕인 박사 유적지와 구림마을 일대에서는 영암왕인문화축제가 열린다.

백제 왕인 박사는 일본에 건너가 태자의 스승이 되고, 아스카 문화를 꽃피운 인물. 축제는 그의 정신과 행적을 재연하는 다양한 역사체험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일본으로 건너가는 행렬을 재연한 테마 퍼레이드 '왕인 박사 일본 가오', 방문객이 떼배를 타볼 수 있는 '상대포 뗏목 타기', 아이들을 위한 '도전 천자문 250계단' 등이다. 영암군청 문화관광과 (061)470-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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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수첩/ 구림마을

▲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 목포IC에서 빠져나와 국도 2호선을 타고 영암까지 가는 데 5시간 가량 소요된다. 영암은 넓은 뻘로 낙지가 많이 잡히는 지역. 특히 학산면 독천리 일대는 갈낙탕이 유명하다. 전라도 한우와 개펄에서 잡은 낙지로 요리하는 영암의 별미 보양식이다.

▲ 월출산 자락 도갑사 입구에는 호남식당(061-472-0509) 등 풍성한 닭요리 집들이 있다. 닭 1마리로 4인상을 풀어내는 촌닭정식이 4만원. 닭가슴살과 닭똥집으로 차려낸 닭육회, 껍질 소금볶음, 닭불고기, 한방백숙에 이어 흑임자 닭죽이 나온다. 닭을 육회로 먹는 것은 이 지방의 별미. 닭 1마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양이 푸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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