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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링어, 목을 비트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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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링어, 목을 비트는 아이

입력
2008.03.2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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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리 스피넬리 지음ㆍ최지현 옮김/ 메타포 발행ㆍ288쪽ㆍ9,800원

평화로운 시골 마을 ‘웨이머’의 가을 가족 축제엔 ‘비둘기의 날’이란 행사가 열린다. 미리 포획한 비둘기를 날리곤 거기에 총을 쏴 명사수를 가리는 대회다. 사수들의 참가비가 마을 공원 관리에 소중히 쓰인다는 명분으로 매해 5,000마리의 비둘기가 죽음에 내몰린다. 남자 아이들도 덩달아 열광한다. 열 살 넘은 웨이머의 소년에겐 숨통이 끊어지지 않은 채 추락한 비둘기의 목을 비트는 링어(wringer)의 자격이 주어진다.

아홉 살 생일을 맞은 ‘파머’ 주위엔 링어가 돼서 제 강인함을 과시하려 안달하는 친구들이 득시글댄다. 잔혹한 ‘생일빵’을 견디고 스너츠(코딱지)란 별명을 기꺼워하며 파머는 그악스러운 동료들과 잘도 어울린다. 친하던 옆집 소녀 ‘도로시’를 괴롭히는 일에도 거리낌없다.

하지만 파머의 이층방 창문에 한 비둘기가 날아들면서 소년의 위악 심리엔 좍좍 금이 간다. 니퍼(nipperㆍ꼬집는 사람)라 이름 붙인, 아침마다 잠든 자신을 부리로 꼬집어 깨우는 새가 사랑스러워질수록, 파머는 친구들이 자신의 여린 심성을 알아챌까봐, 행여 이 ‘예비 링어’들이 니퍼에게 해꼬지 할까봐 두려워진다.

이 성장소설의 원제는 <링어(wringer)> . ‘쥐어짜는 사람’과 ‘쓰라린 경험’이란 뜻을 함께 지닌 단어라 의미심장하다. 니퍼(nipper)에 ‘소년’이란 의미가 있다는 점까지 보태면 소설의 풍자적 의미가 분명해진다. 소년은 공명심에 젖어 링어가 되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제 자신(니퍼=소년)을 해치는 행위에 다름 아니라는 것. 소년들의 위악을 재촉하는 또래 집단 뒤에 축제란 허울을 쓰고 집단 광기를 발산하는 사회가 놓여 있음도 소설은 세련되게 폭로한다.

파머가 니퍼를 구하려 핏빛 깃털과 탄환이 난무하는 대회장에 뛰어드는 장면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다가 종국엔 답답하게 한다. 얼마나 많은 선한 마음들이 ‘폭력 권하는 사회’ 속에서 오그라들어 있을 것인가. 그래서 파머의 용기는 자기 해방보단 차라리 절규로 읽힌다(파머의 행동을 사소한 해프닝쯤으로 다룬 소설 속 신문기사가 이런 느낌을 더한다).

1990년 미국 최고 권위의 아동문학상 ‘뉴베리상’을 받은 제리 스피넬리(66)는 1997년 이 작품으로 다시금 뉴베리상 최종 후보에 올라 2등상인 ‘뉴베리 아너 상’을 수상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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