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정책 방향을 대기업집단(재벌) 규제 위주에서 경쟁 촉진과 시장친화적 제도 정착으로 전환하겠다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관련법과 시행령을 고쳐 상반기 내에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물론, 상호출자와 채무보증이 금지되는 대기업재벌도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에서 5조원 이상으로 대폭 완화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출총제 규제를 받아온 7대 재벌 소속 25개사가 자유롭게 출자할 수 있게 되고, 하이트맥주 등 자산규모 5조원 미만인 21개 그룹은 상호출자와 채무보증의 굴레에서 풀려나게 된다.
이런 조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새 정부의 성격이나, 전경련 등 재계의 집요한 로비를 감안하면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이 대통령이 업무보고 자리에서 “공정위가 기업활동과 시장경제를 다소 위축시킨 감이 있다”며 “국내 기업들이 세계와 경쟁할 때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싸울 수 없으며 조금이라도 강점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문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공정위가 구시대적 규제를 혁파하고 역할을 재정립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규제를 풀 때는 도입된 역사와 배경을 잘 살펴야 하고, 규제를 푸는 이유와 효과도 분명해야 한다. 막연하게 글로벌 스탠더드를 들이대고, 친기업적 분위기를 만든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점에서 공정위가 출총제뿐 아니라 상호출자와 채무보증 울타리마저 허물겠다는 것은 시장친화적이라기보다 재벌친화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공정위는 “사전적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공시제도 강화 등 자율감시체제를 확대하고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나 담합 등 악질적 경제범죄는 엄벌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학계나 시민단체 등의 지적처럼, 공정위가 재벌의 ‘폭식성’을 과소평가했다는 우려는 지울 수 없다.
최근 열린 한국경제학회 정책세미나에서도 “출자규제를 풀면 오히려 투자에 쓰일 돈이 출자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제기됐다. 공정위와 재계가 이런 걱정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정책메시지는 왜곡되고 결국 제 발등을 찍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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