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산맥 아래 '은둔의 왕국' 부탄은 24일 현 왕조 100년 역사상 처음 실시된 총선 결과 입헌군주국으로 바뀌었다. 영구 재임을 보장받았던 부탄의 국왕은 이제 가능성은 낮지만 의회가 3분 2 이상의 찬성을 하면 탄핵될 수 있는 불안한 신분으로 전락했다. 부탄의 왕실은 왜 스스로 절대권력을 포기하고 국민이 원하지도 않는 의회 민주주의를 선택했을까.
2006년 사망한 지그메 싱계 왕추크 전 국왕이 의회로의 권력이양을 전격 선언한 2005년의 부탄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반세계화'의 모범 국가였다. 그러나 왕추크 국왕의 눈에는 이 같은 평화와 행복은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왕정국가에서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보았다.
40년(1971년 즉위) 가까운 통치기간 중 국민의 경제수준은 상당히 높아졌지만, 정치ㆍ경제적 개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언제 다시 국민의 원성을 들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왕추크 국왕의 '결단'은 냉철한 정세 판단을 밑바탕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불교 왕정국가들은 한결같이 이웃국가에 병합되거나 국민에 의해 버림받는 비극으로 왕정을 끝냈다.
카슈미르의 '라다크' 왕조가 1949년 인도와 파키스탄에 나뉘어 흡수되고, 50년에는 티베트가 중국에 강제 병합됐다. 75년에는 불교와 힌두교의 나라였던 시킴이 인도로 편입됐다. 여기에 2006년 4월 이웃나라 네팔에서 왕정폐지를 요구하며 일어난 전국적인 반 봉건 민중시위는 절대권력 포기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전부를 잃지 않기 위해서 권력의 일부를 포기하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미국 일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현지 언론 보도를 인용, "부탄 같은 작고 불안정한 나라는 적절한 정치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적인 요인 외에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경제적 필요성이다. 국민총행복(GNHㆍGross National Happiness)이란 '행복지수' 개념을 만들며 부탄 국민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민의 하나로 만들었으나 빈곤, 실업 등 경제문제는 여전했다.
국민의 5분의 1 이상이 빈곤선 아래에서 허덕이고 있고 도시에서는 실업이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15~24세 청년층의 실업률은 계속 늘어나 5%를 넘어섰다.
고민하던 왕추크 국왕은 타개책으로 관광산업 육성을 내걸었다. 국민 대부분이 생계를 기대고 있는 농업 외에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관광 말고는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항과 호텔을 세우고 도로를 짓는 등 인프라 시설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절대왕정에서 이 모든 것들은 한계를 보였다. 민간경제에 자생력을 불러일으키고,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분산, 의회의 책임정치가 절실했다.
국민이 아닌 국왕이 원해서 이뤄진 권력이양은 왕실의 안정과 경제 활성화란 두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었다. 총선이 실시됐지만 부탄 국민의 왕실에 대한 존경과 사람은 여전하다. 예단할 수 없지만 현재로선 최소한 한가지 면에서는 출발이 괜찮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