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독일 쾰른극장의 전속가수로 입단한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37)은 2년간 단역을 전전했다. 이탈리아 베르디 음악원 졸업 후 부푼 꿈을 안고 독일로 옮겨갔지만, 좀체 캐스팅이 되지 않았다.
2001년 <카르멘> 의 오디션에서 낙방, 풀이 죽어있던 그에게 한 극장 직원이 말을 걸었다. “당신에게는 바그너가 어울릴 것 같은데 한 번 공부해보지 그래요?” 이듬해 그는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중 <라인의 황금> 의 돈노 역할로 바그너 오페라에 데뷔했다. 라인의> 니벨룽겐의> 카르멘>
잠시 한국에 들른 사무엘 윤은 “이상하게 너무나 편안하게 노래했다. 박수도 주역보다 많이 받았고, 바그너에 소질이 있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무엇보다 음악이 그를 잡았다. 신들의 왕인 보탄이 난쟁이 알베리히에게서 반지를 빼앗는 장면에서 그는 ‘이것이 지옥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2003년 자신의 홈페이지에 ‘보탄이 될 그날을 꿈꾸며’라는 글귀를 적어넣었다. 15년 안에 동양인 최초의 보탄이 되겠다는 결심이었다. 꿈의 실현은 10년이 당겨졌다.
9월 30일부터 포르투갈 리스본 국립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니벨룽겐의 반지> 중 3부 <지그프리트> 에서 보탄 역을 맡게된 것. 2부까지 보탄을 하던 성악가가 건강 문제로 도중 하차하자 리스본 극장장이 SOS를 보냈다. 7년 전 그에게 바그너를 해보라고 처음 권유했던 바로 그 직원이었다. 지그프리트> 니벨룽겐의>
유럽 주요극장에서 동양인이 보탄을 노래하는 것은 처음이다. 게르만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우두머리인 보탄은 그리스 신화로 치면 제우스신에 해당한다. 독일 오페라에서 바리톤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권좌로 통하는 역할이다.
동양인에게 지금껏 문이 열리지 않은 것은 보탄이 가진 상징적 의미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 역할을 노래할 수 있는 가수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베이스의 아주 낮은 음부터 하이 바리톤까지 넓은 음역을 소화해야 하며 보통 오페라의 2배에 가까운 오케스트라 편성과 긴 공연 시간을 뚫고 나올 수 있는 장대한 성량과 체력이 요구된다. 사무엘 윤이 출연하는 <지그프리트> 의 공연 시간은 5시간이 넘는다. 세계적 바리톤 브린 터펠 조차 오랜 기다림 끝에 보탄을 불렀지만 망신을 샀다. 지그프리트>
튼튼한 성대를 타고난 ‘헬덴(영웅적) 바리톤’인 사무엘 윤은 “발성과 테크닉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했다가는 성대를 다치기 쉬운 역할이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공부하며 다진 기초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쾰른극장 전속이지만, 극장 측의 양해로 1년의 절반은 베를린도이체오퍼와 프랑스 바스티유오페라 등의 초청에 응하고 있다. 이탈리아 라스칼라 데뷔도 예정돼있고, 쾰른 음대 강단에도 선다. 그야말로 탄탄대로다.
15년은 걸릴 거라 생각한 꿈이 5년 만에 이뤄졌는데 이제는 무엇을 꿈꾸냐고 물었다. “저에게 이번 캐스팅은 하나의 꿈이 이뤄졌다는 기쁨과 새로운 꿈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는 희망을 동시에 줬습니다. 새로운 꿈은 ‘바이로이트의 보탄’입니다.” 바그너의 성지로 불리는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보탄을 부른다는 것은 세계 최고와 동일한 의미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사진=왕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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