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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블랙버드' '레이디 멕베스' 리뷰/ 여배우들의 열연"이것이 연극의 참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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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블랙버드' '레이디 멕베스' 리뷰/ 여배우들의 열연"이것이 연극의 참맛"

입력
2008.03.2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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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장난만 난무하는 코미디 연극과 상업성에 바탕을 둔 뮤지컬이 공연계를 점거한 요즘, 연기파 여배우의 열연이 돋보이는 두 편의 연극이 동시에 막을 올려 눈길을 끈다.

국내 초연으로 추상미를 3년 만에 무대로 불러 세운 연극 <블랙버드> 와 ‘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 기념 최고의 연극 시리즈’의 첫 작품인 서주희 주연의 연극 <레이디 맥베스> 가 21일 개막했다. 이해가 쉽지 만은 않은 이 두 편에 대한 관객의 반응도 긍정적이어서 조심스레 연극성의 회복을 기대케 한다.

■ 블랙버드

2005년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보인 뒤 2006년 2월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블랙버드> 는 소통의 문제를 다룬 연극이다. <블랙버드> 의 시놉시스에 해당하는 ‘12세 소녀와 40세 남성의 성관계, 그리고 15년 후의 대면’은 어찌 보면 부차적인 것이다.

언뜻 소아 성애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스코틀랜드의 젊은 극작가 데이비드 해로우어는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에서 오는 오해와 갈등을 극적으로 담기 위해 전직 미 해병대원 토비 스튜드베이커와 12세 소녀 사이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실화를 모티프로 사용했을 뿐이다.

좀처럼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곳인 듯 쓰레기가 가득한 사무실에서 12세 소녀와 40세 성인으로 성관계를 맺었던 우나(추상미)와 레이(최정우)가 15년 만에 대면한다. 사랑이었을 수도, 또는 성적 학대였을 수도 있는(연극은 끝까지 사건의 실체를 밝히지 않는다) ‘그 사건’으로 두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회의 비난 속에 삶을 힘겹게 꾸려간 것은 공통적이지만 그들에게 사건은 다르게 기억된다. 여자는 사랑으로 믿고 싶지만 이미 피터라는 다른 이름으로 새 인생을 꾸린 남자에게는 그저 지우고 싶은 악몽이다. 그래서 엇갈리기만 하는 그들의 대화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다른 무대 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온전히 텍스트만으로 강력한 갈등을 이끌어내는 이 작품은 2006년 영국의 권위 있는 연극상인 로렌스 올리비에 희곡상을 수상했다.

다만 21일 첫 공연에서 보여준 추상미와 최정우의 연기는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해 이 작품의 참맛을 나타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작품의 중심이 돼야 할 우나와 레이의 복잡한 심리 상태와 팽팽한 견제보다 15년 전 사건이 무엇이었지는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급급해 보였다.

제목인 <블랙버드> 는 죄와 유혹, 또는 악마를 상징한다. 우나에게는 사랑이었을, 또는 레이에게는 12세 소녀의 싱싱한 아름다움이었을 유혹, 블랙버드가 그들의 인생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이야기다. 이영석 연출. 5월 25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02)766-6007

■ 레이디 맥베스

<블랙버드> 가 텍스트에 집중해야 하는 연극이라면 <레이디 맥베스> 는 시각과 청각, 즉 감각으로 느끼는 연극이다. 1998년 초연 때부터 일찌감치 오브제극(물체극)과 연극의 결합이라는 독창적인 구성으로 큰 호응을 얻은 작품으로 99년과 2000년, 2002년에 이어 6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초연의 큰 틀은 유지하되 타악기 연주자 박재천의 라이브 연주와 김민정의 정가(正歌) 소리로 극의 긴장감을 더했다.

670석의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객석을 과감히 포기하고 무대 위에 디귿자형의 300석의 객석을 마련한 것은 관객에게 제의(祭儀)를 감상하듯 바로 코앞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특별한 관극 체험을 선사한다.

내용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에서 따왔다. 권력욕으로 남편 맥베스를 부추겨 던컨 왕을 살해한 레이디 맥베스(서주희)는 심각한 몽유 증세를 보이고 이에 궁중 전의(정동환)와 시종들이 최면 요법을 시도한다. 치유 과정에서 연극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레이디 맥베스의 잔인함을 드러내고 종국에는 고통의 실체인 죄의식과 맞닥뜨리게 한다.

하지만 무대에 구현되는 것은 던컨 왕의 죽음도 맥베스의 잔인한 살인도 아니다. 무대에서 태어나고 사라지는 오브제, 즉 물체의 힘이 배우들의 몰입 경에 힘을 싣는다. 공중에 매달린 채로 오브제 아티스트 이영란에 의해 찰흙으로 빚어졌다 다시 뭉개지는 던컨 왕의 얼굴은 피범벅이 된 시체의 모습보다 더 싸늘하고 안쓰러웠다.

레이디 맥베스가 죄의식과 마주하며 벼루 모양의 무대에 고인 물에 몸을 던지는 장면은 마치 피로 죄를 씻어내는 듯 처절했다.

러닝타임 80분 내 굳게 닫혀 있던 막이 열리면 죄의식으로 고통스러워 하던 레이디 맥베스가 객석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으로 연극은 끝을 맺는다. 그제서야 관객은 무대 위에 앉아 있음을 깨닫게 되고 객석 저편에서 레이디 맥베스는 ‘당신들 역시 부조리한 인간의 본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하는 듯 무대 위 관객을 처연한 눈빛으로 돌아본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연극인가. <레이디 맥베스> 는 연극보다 더 소름 끼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을 방치한 죄의식?들킨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한태숙 작, 연출. 4월 13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580-1300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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