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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업무보고에서 나타난 MB 통치철학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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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업무보고에서 나타난 MB 통치철학 3가지

입력
2008.03.24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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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직사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이야기만 나오면 다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라고 한다. 취임 한 달도 되지 않아 ‘아주 깐깐한 시어머니상’이 도드라져서다.

이 대통령은 정부 출범과 함께 ‘공직자 군기반장’을 자처하고 있다. 복지부동 행태를 단호히 비판했고, 낭비성 예산 지출은 철저히 배격했다. 또 창의적 발상 전환을 통한 질 높은 서비스를 거듭 강조했다. 2주간 계속된 정부부처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의 이러한 세가지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속에는 공직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통치철학이 묻어나 있다.

‘호통 명박’

이 대통령은 먼저 공직자 기강잡기에 나섰다. 일반 사회직종에 비해 업무 스타일이 너무 느슨하다는 것이다. 10일 기획재정부에서 이 대통령은 “기업은 잘못하면 부도나고 봉급을 못 주는 데, 국민이 일자리 없이 힘들어 할 때 공직자들은 그런 생각으로 일했느냐”고 질타했다. 그는 “공직자는 국민의 머슴인데 그런 역할을 했는가”라고도 했다. 머슴이 주인 행세를 했다는 비판이다.

11일 외교통상부와 14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업무성과도 형편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교부가 한 것에 불만이 좀 있다”며 “무엇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하지 않고 서로 의견을 달리해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그렇게 (불편하게) 유지했는가”라고 일갈했다. 문화부에서는 “균형된 정책을 펴지 못해 문화국가 지향에 걸맞은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업무 자세도 느슨한 데다 결과도 수준 이하라는 것이다.

교육부에서는 호통 강도를 더 높였다. 이 대통령은 “교육부가 모든 교육기관에 군림해 숨도 쉬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고 비판한 뒤 “학생만 피나게 경쟁하고 학부모도 경쟁했는데, 학교와 선생님은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이래서는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없다”며 교육 공급자의 문제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철밥통’ 공무원 사회를 겨냥해 업무 태도를 바꾸고 성과를 높이라는 준엄한 경고였다.

‘검약 명박’

이 대통령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내 돈도 아닌데…”다. 그는 최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연간 임대료 10억원대인 사무실을 임대하려 하자 ‘임대료 없는 국가소유 건물로 알아보라’고 퇴짜를 놓았다. 결국 이 위원회는 옛 정통부 건물에 둥지를 틀었고, 미래특별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도 뒤따라 함께 입주했다. 공직사회 일각에서 관행적으로 예산을 집행해 곳곳에서 낭비성 지출이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12일 용인서 열린 국방부 업무보고에서도 “용인시청이 새로 지어 서울시청보다 좋은데, 관청 건물은 민간 건물보다 너무 좋게 지으면 안 된다. 그게 다 낭비”라고 비판했다.

17일 지식경제부 업무보고차 경북 구미로 가는 일정은 당초 비행기로 가려다 대통령 지시로 KTX로 바뀌었다. “에너지 위기라면서 굳이 비행기를 탈 필요 있느냐”고 말해 비서진이 부랴부랴 계획을 변경했다. 또 19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한 참석자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보고서 용지를 흑백으로 했다”고 말하자 이 대통령은 “이런 업무보고가 실용적”이라고 칭찬을 거듭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 몸에 밴 검약 정신이 알게 모르게 국가 예산 집행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꼼꼼 명박’

최근 이 대통령에게 업무를 보고한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3시간을 내리 앉아 있느라 진땀을 뺐다. 그는 “화장실이 급한데 대통령이 이것 저것 계속 물어봐 움직일 수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다른 비서관은 대통령이 보고 때마다 중간중간에 “그 방법 말고 이렇게 하면 어떨까” “이 안(案) 말고 다른 안은 없는가” “외국서는 어떤가” 식으로 꼬치꼬치 물어보고, 궁금증을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고 전했다. 한 비서관이 “밀가루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보고하자 이 대통령은 대뜸 “(오른 게) 밀이야, 밀가루야”라고 되물었다 한다. 가격상승 원인이 원재료인지 밀가루인지를 따져 물은 것이다. 이 비서관은 “철저한 준비를 안 해가면 보고 시 본전도 못 찾는다”고 전했다.

‘문턱 높은 철밥통’으로 비유되는 공직사회를 바라보는 국민 입장에서 느슨한 공직자의 업무자세를 경계하는 대통령의 태도가 일단 속 시원해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창조적 실용주의가 실속 있는 결과로 이어지는 데 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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