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전날 총 연습은 초긴장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연기자끼리 대사를 맞출 차례가 되었다. 내가 긴장하여 대사를 계속 씹었다. 고성원 PD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잠시 휴식시간을 달라고 하여 밖으로 나갔다. 조영일 선배와 김혜자 선배가 따라 나왔다. 나는 그들에게 연습을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두 선배가 연습실로 돌아간 후 PD가 나를 불렀다. 그는 노련한 연출가였다. 연습 없이 일찍 해산을 시켰다. 나는 명동 ‘음악실 다방’으로 갔다. 평일 대낮, 텅 빈 다방. 나는 음악을 타고 서서히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고요가 찾아왔다. 대본을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그려갔다. 마침내 대본을 덮었다. 탁자 위에 수란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다방 DJ 겸 주인인 조 사장이 빙그레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종일 아무것도 안 먹은 거 같던데...” 주위를 돌아보니 나 혼자 뿐이었다. 영업이 끝난 지 이미 오래였다.
시끄러운 명동 속, 가장 조용한 명동 ‘음악실 다방’. 나는 심란할 때면 이곳을 찾았다. 음악에 묻혀있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평온해지곤 했다. 이제 ‘내 생애의 최대의 격전’에 대한 작전계획을 마친 것이다.
나는 웃으며 수란을 입 속에 털어 넣었다. “감사합니다. 이제 가서 편안히 자야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일어났다. 그렇다. 대본을 받은 날부터 한 달 내내 하루도 편히 잠을 잔 적이 없었다. 매일 밤 악몽이었다. 그러나 그 날 밤, 나는 죽은 듯이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7시. 마침내 방송 날이다. 기분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하숙집 아줌마가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고 천천히 남산 길을 올라갔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멀리 방송국청사가 보였다. 그 앞에 한 남자가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고성원 PD였다.
그를 향해 달려갔다.
PD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잘 잤니? ” 나도 웃었다. “네. 아주 푹 잤습니다. ” 그가 내 빈 손을 보았다. “... 대본은? 대사는 다 외웠어...?” 나는 어제 자기 전에 대본을 삼켜버렸다. “저 대본 필요 없어요.” 가만히 보던 그가 내 어깨를 안았다. “그래. 너만 믿는다. ”
1966년 말, KBS-TV는 40~50명의 스탭으로 A스튜디오(200평), B스튜디오(150평), C스튜디오(50평) 3개의 스튜디오에서 드라마와 쇼, 교양프로 및 뉴스를 오후5시에서 밤11시까지 생방송으로 제작 방송하고 있었다. 지금 여의도의 KBS청사와 인원에 비교하면 당시의 사람들은 가히 초인적이었다.
주말 낮시간 방송을 위해 녹화방송도 병행하기 시작하였다. 인기 있는 드라마는 주말에 재방송을 하였다. 당연히 <연화궁> 은 일요일 오후 골든타임에 재방송되기로 편성되어 있었다. 연화궁>
<연화궁> 세트는 A스튜디오에 세워졌다. 어제 그토록 ‘버벅대던’ 내가 드라이 리허설(카메라 없이 연기자의 대사와 동작만의 연습)을 귀신같이 소화해냈다. 대본도 없이 한마디도 씹지 않고 일사천리로 내가 대사를 뱉는 것 아닌가. PD와 연기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웃기만 하였다. 연화궁>
카메라 리허설도 물론 OK. 그래. <방송 때도 지금과 같이 해야 한다.>방송>
드디어 생방송 시간이다. 주조종실에서 고PD의 “스텐 바이” 사인 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왔다. 은방울자매의 주제곡과 함께 조영일, 김혜자 선배와 창경궁에서 촬영한 타이틀백이 흘렀다. 마침내 스튜디오에 ‘ON AIR’ 등이 켜졌다.
이어 나를 향한 A카메라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내 몸에 맞춘 동궁 옷, 머리에 금분을 칠한 관, 내 발에 신발.> 더 이상 바랄 게 무엇인가. 내가 주인공이다. 나는 ‘도망가지’ 않는다. 나는 자신 있게 움직였다. 대사도 자신 있게 뱉었다. 포옹장면이 왔다. 조영일 선배를 힘차게, 꽉- 껴안았다. 그녀가 내 행동에 놀라 대사를 씹었다. 나는 계획대로 다 하였다. 내>
마침내 엔딩 뮤직이 주조종실에서 흘러나왔다. 스탭과 연기자들이 환호를 지르며 달려와 나를 들어올렸다.
“잘 했다!!” 주조종실에서 고PD가 나를 향해 엄지를 높이 올리며 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나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단 하나, 첫 방송이 무사히 나갔다는 것만은 알았다.
그날 밤. 모든 스탭, 연기자들이 명동의 막걸리집을 통째로 빌려 파티를 열었다. 나는 정말 기분 좋게 취했다. PD와 선배연기자들의 사랑이 아니었으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몇 번이고 인사를 하였다.
다음날 할머니를 뵈러 큰누나 집으로 갔다.
집에서 쫓겨난 후에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고모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는 어머니 대신 나를 키워주셨다. ‘대신’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마땅한 표현도 없다. 할머니는 어머니였다.(영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는 나의 할머니에게 바친 작품이다.)
어떤 경우에도 할머니를 걱정시켜드릴 순 없었다. 식구들에게도 내가 집에서 나가있는 것을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하였다. 할머니는 내가 착실히 대학을 잘 다니는 줄 알고 계셨다.
모처럼 출연료가 두둑히 든 봉투를 뜯어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곶감을 샀다.
“할매. 내 왔소.”
대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할머니가 반갑게 부엌에서 얼굴을 내미셨다.
“아이고, 맹종이 왔나. 어제, 니 텔레비전에 나오데...”
나는 깜짝 놀랐다.
“하...할매, ...봤소?”
할머니가 활짝 웃으셨다.
“어제 난리 안 났었나.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마당까지 꽉 차고, 나는 집 무너지는 줄 알았다.”
이 때 전화벨이 울렸다. 할머니가 전화를 받더니 막내 누나니 받아보라 하셨다.
“얘, 어제 너무 너무 좋았어! 근데 무슨 일 있니? 방송국에서 널 찾으려고 내 직장으로 전화를 했어. 빨리 방송국으로 오래, 빨리! ”
전화가 끊어졌다. ... 무슨 일인가?
“할매. 내 가요. 내일 또 올게.”
나는 급히 방송국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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