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총통(대통령) 선거일 전야인 21일 밤 대만은 민진당의 녹색 깃발과 국민당의 청색 깃발로 뒤덮였다. 모든 열기를 뿜어내는 결정과 분출의 시간이었다.
이날 밤 타이베이(臺北) 징푸먼(景福門) 로터리에서 열린 국민당 유세는 막판 표심을 잡기 위한 열기로 들끓었다. 저녁 6시 30분 3,000여명의 지지자로 시작한 유세는 1시간 남짓 만에 1만명을 넘어섰고 밤 9시가 되자 10만에 육박했다.
마잉주(馬英九) 국민당 후보 지지자들은‘마잉주에게 표를’이라고 새겨진풍선, 촛불, 깃발을 들고 3시간 넘게 흔들었다. 선거 주제가인 구슬픈 내용의 <기도> 를 합창할 때 눈물을 흘리고 복받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마 후보 러닝메이트 샤오완창(蕭萬長) 부총통 후보는 쉰 목소리로“천수이볜(陳水扁)총통과 민진당 셰창팅(謝長廷)후보를 뗄 수 있겠습니까”라며 민진당의 경제실정을 부각하자 지지자들은“없습니다”라고 맞장구쳤다. 마 후보는 이날 밤 당락을 가를 가오슝(高雄), 타이중(臺中) 중남부에서 20만~30만명의 대형집회를 갖고“민진당에 8년을 주었지만 돌아온 것은 더 살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기도>
밤 9시 30분 타이베이 101층빌딩 인근 광푸루(光復路)의 셰창팅 후보 유세도 막판 열정을 쏟아내는 15만 지지자들의 열기로 밤늦도록 뜨거웠다. 셰 후보는“누가 대만을 지킬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미국 영주권 보유 전력이 있고 중국에 접근하려는 마 후보의 약점을 최대한 파고들었다.‘ 중국 패권 반대’라고 적힌 현수막이 눈에 띄었고 지지자들은 축구장에서 부는경적을 쉴새 없이 불어 옆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장메이링(張美伶)씨는 가족들과 함께‘역전승’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날 낮 민진당 선거운동 본부에서도‘역전승’이라는 플래카드가 나부꼈는데 선거 초판의 열세를 만회했다는 지지자들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두 진영의 현장 열기는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두 후보는 상대방 강세지역에서 마지막 유세를 여는 세 대결을 펼쳤다. 막판 유세는 정책보다는 감성을 중시하고, 관광버스로 군중을 동원하는 대만 정치의 현주소도 드러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신중했다. 타이베이에서 만난 적지 않은 이들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천자이쿤(陳再坤)씨는“마 후보는 못 미덥고 셰 후보는 내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 판세는 10일 전과 비교해 크게 변했다. 지지율에서 20% 포인트 앞섰던 마 후보가 10%이상 까먹고 한 자릿수 리드를 지키고 있다. 민진당은 1% 이내 접전이라고까지 말한다.
최근 마 후보에게 악재가 많았다.
특히 티베트 사태는 중국 경계심을 불러와 대중 유화노선의 마 후보표를 잠식하면서 판세를 뒤흔들고 있다. 이날도 셰 후보는“티베트의 일이 대만에서 일어날 수 있다”며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쑤전창(蘇貞昌) 민진당 부총통 후보는 타이베이의 티베트 시위 집회에 참석해 티베트 발(發) 호재를 키우는 데 안간힘을 썼다. 셰 후보 TV 광고에는 티베트 사태 항의 촛불집회화면이 나왔다. CNN 등 외신들도“티베트 문제가 대만 선거를 좌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동층에 영향력이 있는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과 노벨상 수상자 리위앤저(李遠哲)박사의 셰후보 지지 선언, 국민당의 중국-대만공동시장 공약의 비현실성 논란도 마 후보에게는 뼈 아팠다. 국민당은 셰창팅 후보가 직접 나서 국민당의 매표 의혹을 제기하자 흑색선전이라며 방어막을 치는 등 막판 비방전이 난무했다.
소식통들은 판세가 예측 불허라고 전했다. 하지만 아직은 셰 후보보다는 마 후보의 승리를 점치는 예상이 앞선다. 지지층의 분열과 대립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중국을 이용해야 대만 경제가 산다는 인식은 공유하고 있었다.
5월 20일부터 4년간 대만을 이끄는 새 총통은 22일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되는 투표로 결정된다.
타이베이=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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