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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5> 혀놀림 - 공감각(共感覺)의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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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5> 혀놀림 - 공감각(共感覺)의 물리학

입력
2008.03.24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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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놀림은 말 그대로 혀를 놀리는 짓이다. 여기서 놀린다는 것은 빈정거린다거나 조롱한다는 뜻이 아니라, 움직거리게 한다, 놀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혀놀림은 혀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다.

혀놀림이 사랑에 끼여드는 층위는 크게 셋이다. 그 첫째는 언어 층위다. 혀를 놀린다는 것은, 비유적으로, 말을 한다는 뜻이다. 물론 다소 얕잡아 하는 말이다. 말하기를 혀놀림이라 이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음식의 맛을 보고 씹는 것이 혀의 핵심 기능이기는 하겠으나, 사람의 혀는 그 못지않게 말하는 데 소용되는 기관이니 말이다. 혀가 없다면, 사람이 낼 수 있는 자음의 가짓수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음성학 입문서는 혀를 중요한 조음기관의 하나로 꼽는다. 혀끝소리(설단음, /ᄂ/ /ᄃ/ /ᄐ/ /ᄄ/이나, 받침이 아닌 /ᄅ/ 소리 따위), 혀옆소리(설측음, 받침 /ᄅ/ 계열의 소리들), 혀말이소리(권설음. 중국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혀를 말아 올려 내는 자음) 같은 음성학용어들은 혀의 조음기능을 직접 드러낸다.

사실 이런 말들이 아니더라도, 직접 혀를 놀려보기만 하면, 소리를 내는 데 혀가 얼마나 쓸모 있는지 금세 깨달을 수 있다. 혀를 놀리지 않은 채 ‘사랑’이라고 말해보라. 그저 ‘아앙’이 될 뿐이다.

‘혀짤배기’나 ‘혀꼬부랑이’ 같은 말도 혀가 긴요한 조음기관이라는 걸 알려준다. 혀짤배기는 혀가 짧아 /ᄅ/ 소리를 똑똑히 내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고, 혀꼬부랑이는 (술에 취하거나 병이 들어) 발음 일반이 또렷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다. 가볍기는 하나 장애라 할 수 있고 얕잡음의 뉘앙스까지 담겼으니,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써선 안 될 말이다.

조음기관… 말주변은 사랑의 무기

적잖은 한국어 관용표현에서, 혀는 특정한 조음기관을 훌쩍 넘어 조음기관 전체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말이나 언어의 은유로 사용된다. 당장 이 글의 주제인 ‘혀놀림’에서 그렇거니와, ‘혀가 굳었다’, ‘혀를 내두르다’, ‘혀를 조심하다’, ‘혀를 깨물다’ 따위의 표현에서도 마찬가지다.

혀에 언어를 비유하는 예는 유럽어에도 흔하다. 그저 비유라 말하는 것으론 모자라겠다. 적지 않은 유럽어가 혀와 언어를 동일한 시니피앙으로 드러내니 말이다. 고대그리스어의 글로사(glossa)나 글로타(glotta), 라틴어의 링과(lingua)가 그렇고, 현대프랑스어의 랑그(langue), 현대스페인어의 렝과(lengua), 현대영어의 텅(tongue), 현대독일어의 충에(Zunge)가 다 그렇다.

독일어나 영어에는 ‘언어’에 해당하는 슈프라헤(Sprache)나 랭귀지(language)라는 말이 따로 있어서 언어를 뜻하는 혀(‘충에’나 ‘텅’)가 비유라는 게 그나마 또렷하지만, 라틴어에 뿌리를 둔 현대 로만어들은 혀와 언어를 아예 고스란히 포갠다. 고전어를 차용한 몇몇 현대적 ‘문화어휘’에서도 혀와 언어의 겹침을 볼 수 있다.

두 가지 언어를 쓴다는 뜻의 영어단어 바일링궐(bilingual)은 어원적으로 ‘혀 둘을 지녔다’는 뜻이고, 여러 언어에 능통한 사람을 가리키는 영어단어 폴리글롯(polyglot)도 어원적으로 ‘많은 혀’라는 뜻이다.

구애의 중요한 기술 하나는 말솜씨다. 참이든 참으로 꾸민 거짓이든, 신실함이든 신실함으로 위장한 허장성세든, 그럴싸해 보이는 말에 사람들은 자주 홀린다. 말주변은 사랑의 무기다. 태고 이래 노래꾼들이 읊은 시들의 태반이 사랑노래였던 것도 당연하다. 그러니, 혀놀림의 기술은 유혹의 기술이고 사랑의 기술이다.

혀놀림이 사랑에 개입하는 다른 층위는 대놓고 육체적이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혀를 놀리는 행위다. 언어로서의 혀놀림이 들려주기 위한 것이라면, 행위로서의 혀놀림은 보여주거나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행위로서의 혀놀림은 다시 둘로 나뉜다. 그 하나, 보여주는 혀놀림은 저 혼자 혀를 놀리는 것이다.

이 혀놀림은 아직 섹스에는 이르지 않은 행위지만, 섹스로 가기 위한(또는 그저 보는 이들에게 성욕을 불어넣기 위한) 노골적 유혹이거나 도발 행위다. 우리는 더러 배우나 엔터테이너들이 스크린이나 무대 위에서 제 혀를 놀림으로써 연기상대를, 더 나아가 관객을 성적으로 자극하는 걸 목격한다.

또 다른 하나, 느끼게 하는 혀놀림은 소위 프렌치키스나 구강성교와 관련돼 있다. 프렌치키스가 섹스의 문턱이라면, 구강성교는 섹스의 정원이거나 실내다. 구강성교에는 혀만이 아니라 입술과 이도 개입하지만, 이 성행위의 실행자들이 주로 쓰는 것은 혀다.

구강성교 가운데 가장 널리 실행되는 것은 펠라티오(fellatio)와 쿤닐링구스(cunnilingus)다. 펠라티오는 남성 성기에 실행되는 혀놀림이다. 단지 혀를 놀리는 정도가 아니라 성기 전체를 실행자의 입에 담아 목구멍 깊숙이 넣는 딥스로팅(deepthroating)은 펠라티오의 가장 과격?형태일 것이다.

펠라티오 실행자를 반드시 여성이라 여길 필요는 없겠다. 펠라티오는 동성애자들 사이에서도 실행될 테니까. 아주 드물게는 펠라티오 실행자가 저 자신일 수도 있다.

펠라티오는 자체로 완결돤 性행위

일종의 자위행위가 되겠지. 이런 오토펠라티오(autofellatio: 자기펠라티오)는 몸이 더할 나위 없이 나긋나긋하고 음경이 길어야 가능할 테다. 어떤 포르노 배우는 그것을 실연해 보이기도 했다.

펠라티오는 성기결합의 전희(前戱)로 실행될 수도 있고, 그 자체로 완결된 성행위로서, 다시 말해 오르가슴이나 사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실행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펠라티오는 의사(擬似)섹스나 가성(假性)섹스가 아니라 진성(眞性)섹스다. 이걸 섹스가 아니라고 대담하게 우긴 이가 있었으니, 그가 미국의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이다. 클린턴은 백악관 인턴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내밀한 관계가 스캔들로 비화하자, 자신은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맺은 바 없다고 발뺌했다. 펠라티오는 성행위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펠라티오는 빤다(吸)는 뜻의 라틴어 동사 펠라레(fellare)에서 왔다. 빠는 행위가 펠라티오다. 사실 빤다기보다 핥는다고 해야 할 테다. 아니 빨기도 하고 핥기도 할 것이다. 확언할 수는 없으나, 한국어 ‘혀’와 ‘핥다’는 어원적으로 한 가족일 가능성이 있다.

쿤닐링구스는 여성 성기에 실행되는 혀놀림이다. 음순이나 소위 ‘G-스팟’(이라는 것이 있다면)이라 불리는 부위가 이 혀놀림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일 테다. 펠라티오와 마찬가지로 쿤닐링구스의 실행자는 남성일 수도 있고 여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 자신일 수도 있을까? 이론적으로야 가능하겠지만, 체조선수라 해도 몸이 그렇게 낭창낭창할 수는 없을 성싶다. 쿤닐링구스는 여성의 음문을 뜻하는 라틴어 쿤누스(cunnus)와 혀를 뜻하는 링과를 잇대어 만든 말이다.

펠라티오나 쿤닐링구스만큼 보편적이진 않지만, 구강성교에는 아닐링구스(anilingus)라 부르는 제3의 형태가 있다. 아닐링구스는 항문에 실행되는 혀놀림이다. 항문을 뜻하는 라틴어 아누스(anus)에다가 링과를 포개 만든 말이다.

쿤닐링구스가 그렇듯, 스스로 아닐링구스를 실행할 수 있을 만큼 몸이 유연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요가 수행자라면 가능할까? 모르겠다. 고양이라면 가능하겠지. 오토-아닐링구스는, 그것이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극단적 성도착의 느낌을 줄 것이다.

사실 성 파트너가 실행하는 아닐링구스라 해서 산뜻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다. 펠라티오나 쿤닐링구스와 달리, 아닐링구스는 적잖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인체에서 가장 더러운 곳이 항문이라는 관념 때문일 테다. 섹스라는 게 대체로 사적 분위기 바깥에선 들추기 힘든 금기담론에 속하기도 하지만, 구강-항문성교(아닐링구스)나 항문성교는 특히 더 그렇다.

그것은 하드코어 포르노그라피 아니면 사드의 <소돔: 120일> 같은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도착행위로 간주된다. 그러나 정상적 성행위와 비정상적 성행위를 가르는 것이 일종의 문화라면, 아닐링구스가 시공(時空)을 뛰어넘는 성도착인지는 알 수 없다. 아닐링구스가 실행되는 것은 그것이 성적 쾌감을 낳기 때문일 테다. 좌약을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항문 둘레에는 짙은 성감이 퍼져 있다.

실행 범위는 취항·세계관에 달려

혀놀림을 어떻게, 어디까지 실행할지는 개인의 취향과 세계관에 달려있다. 문화적 보수주의자이자 탐식객(貪食客)으로서, 나는 혀놀림을 말하는 데나 연인의 혀를 핥는 데까지만 실행하는 것이 적절하다 여긴다.

사람 몸이 아니더라도, 세상엔 혀를 유혹하는 게 수두룩하다. 당장, 연어회를 곁들인 히레자케 한 잔이 그립다.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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