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 책의 시대가 끝났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 마지막 세대에 속하리라. 직업 탓이기도 하지만 평생 책 속에 묻혀 산 사람으로서 800년의 종말을 목도하는 심정은 나의 죽음을 상상하는 것보다 더 참담하다. 책의 시대는 학문, 교양, 대학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 중 대학은 기형으로나마 살아남을 것 같지만, 학문과 교양은 책과 함께 이미 끝나고 그 자리는 컴퓨터 인터넷 대중문화가 채우고 있다.
지난 50여년 얼마나 읽었을지는 도저히 알 수 없지만 지금 갖고 있는 책만도 만 권이 훨씬 넘어 죽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다. 도서관에 주려고 해도 이젠 받아주지 않는다 하니 보낼 곳도 없다.
그 중에는 10대초 책들, 20개국 이상에서 모은 책들, 백 년 전의 책들, 한국에는 나밖에 갖지 않으리라고 터무니없이 자만하는 책들, 어떤 분야에서는 세상에 나온 중요한 책을 모두 갖고 있다고 하는 역시 터무니없는 자랑 등등, 사실 아무것도 아닌 책 허영의 사연도 많지만 모든 책이 내 인생 자체여서 단 한 권도 내 살붙이가 아닌 게 없다.
단 하나의 책 에피소드만 소개하면, 외국에서 주로 찾는 미술관에서 산 무거운 화집을, 한두 달 여행 동안 언제나 지고 다니고 절대로 보관함에 맡기지 않았으며 잘 때도 안고 잤다는 것이다.
같이 여행한 아내는 돈이 아까워 그런다고 힐난하지만 나는 오로지 책사랑 탓이라고 주장한다. 책을 들고 오다가 초과항공료를 물기도 했고 책을 사러 수없이 외국에 갔으며 사오면 옛날에 샀던 것을 다시 산 것임을 알고 실망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 서글픈 추억이지만 그 때마다 왜 그렇게 황홀했고 감격적이었을까?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이 끝났다. 800년이 끝났다. 그래도 나는 다시 책을 읽는다. 내가 읽은 수많은 책은 내 인생 자체다.
그 중 딱 한 권을 꼽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죽기 직전에 읽을 책은 역시 언제나 진실하게 살라고 말한 간디의 <자서전> 이다. 이 책을 수없이 읽었고 마지막까지 읽고자 하는 이유는 평생 책을 읽었으면서도 결코 진실하게 살지 못한 내 인생에 대한 반성 때문이기도 하다. 자서전>
박홍규ㆍ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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