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에르팽 지음ㆍ김계영 옮김현실문화 발행ㆍ181쪽ㆍ1만1,000원
최근 15년간 스웨덴 징집 대상자 1,300만명을 조사했더니 키가 5㎝ 커질수록 자살위험이 9% 낮아진다는 내용의 연구가 있다. 키가 작을수록 자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소외계층의 자살률이 높은 점을 고려하면 키 작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박탈감을 지니고 살아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이 연구는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즉 사회적 계급에 따른 불평등과 소외가 키라는 신체적 특징을 통해 가시적으로 나타난다는 것. 프랑스의 사회학자 니콜라 에르팽의 <키는 권력이다> 가 천착하는 소재이자 주제다. 키는>
보통 얼굴이 사회적 성공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고 즐겨 말 하지만 키를 둘러싼 우성과 열성의 사회학은 대놓고 언급되진 않는다. 단지 ‘키가 좀 작아서…’라며 부수적인 단점으로 슬쩍 외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키가 외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다. 키가 작았을 때 사회적으로 부딪힐 수 있는 장애를 생각해보라. 경찰이나 군인 등 특정직업은 일정한 신장을 채용의 주요 자격으로 삼는다. “얼굴은 그저 그렇지만 키는 크다”라는 말 속에는 키가 얼굴의 부족한 ‘경쟁력’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숨은 뜻이 담겨있다. 결국 키는 숨은 권력이자 경쟁력인 셈이다.
저자는 키가 계급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종의 지표라고 말한다. 계층간 양극화가 심하지 않은 선진국일수록 평균신장의 수치가 높다거나 키가 큰 남성일수록 연봉을 더 많이 받는다 등의 실증연구를 제시하며 키의 평등화, 나아가 키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계급의 해체를 주장한다. 신체상의 결핍을 조상 탓, 조물주 탓으로만 돌리는 이들에게는 꽤 과격한 주장으로 들릴 수 있다.
저자는 책 막바지에 외친다. “만국의 키 작은 사람들이여, 단결하라!” 키를 계급 불평등의 극명한 예로 들었다지만 다분히 선동적이면서 비현실적인 구호다. 임금과 성별, 인종에 따른 불평등 해결에도 힘이 부친 이 사회가 과연 키 작은 이들의 단결과 집단행동까지 받아줄 아량이 있을까. 키와 권력의 관계를 조밀하게 파헤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저서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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