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밥 한 끼에도 기승전결이 있다. 세상은 갈수록 더 빨리 돌아가지만, 그래서 기승전결 따져가며 밥 먹자는 소리가 동에도 닿지 않지만.
어쨌든 식사의 준비를 하는 시간, 본 식전에 입맛을 축이는 시간, 본격적으로 밥을 먹는 시간 그리고 잘 먹은 밥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두루 거치면 그 자체로 미식이다. 본 식사로 김구이에 밥 한공기만 나왔어도 뭔가 잘 먹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여유롭게 먹은 듯이 먹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여유를 갖고 음미한 식사를 마무리할 경우, 후식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과 마음의 공을 들여 먹은 식사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그 여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밥상도 향기롭게 기억시켜 줄 후식거리가 뭐 없을까?
맛있는 후식은 꼭 밥 때가 아니더라도 먹고 싶다. 온갖 찬으로 물든 식후의 입맛을 떡 한 조각으로 가셔주어도 좋지만, 배가 부르지 않은 상태에서 온전히 떡과 차만 즐기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일상의 재미다. 선조들은 다과상이라 하여, 사대부 집안의 손님맞이에 차려내곤 했다. 차려지는 다과의 수와 종류, 그 모양새나 식기 등으로 그 집안의 지위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기에 안주인들이 신경 꽤나 쓰던 부분이었다.
근대화 속 허례허식을 몰아내는 운동으로 실용적이고 간편한 것으로 모든 것이 대체된 지금, 화려했던 전통 다과의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은 아쉽고 아까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전통 있는 ‘우리 디저트’가 다른 문화권과 후세에 알려지는 기회는 열려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 교토의 400년짜리 떡
초고층 빌딩이 하루가 멀다 새로 세워지고, 첨단 시스템으로 도시가 돌아가는 도쿄.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록본기의 미드타운 쇼핑몰이나 도쿄역 앞의 신마루 빌딩을 둘러보면 별천지가 따로 없다. 세계에서 가장 새로운 것, 가장 비싸고 유명한 것이 모여 있는 첨단 쇼핑가를 지나면 닌교초(人形町)와 같이 역사가 오랜 골목이 이어진다.
에도 시대부터 일본 전통 인형극과 연극 무대가 즐비했던 동네로, 인형을 만드는 장인들이 모여 살아 그 이름이 유래했다는 곳이다. 연극 무대가 사라진 지금도 왕년의 영화를 보여주는 숍들과 맛집들이 그대로 남아 오랜 향기를 전하는데. 몇십년 된 과자집은 예사고, 몇백년 세월을 대물림하여 이어온 떡집도 있다.
덴쇼 4년(1576년)에 교토에서 창업한 이래 단 것을 만들어오고 있는 옥영당(玉英堂)의 경우, 도쿄에서는 닌교초의 분점에서만 맛볼 수 있다. 특히 인기상품인 ‘옥만’은 찐빵과 만주의 중간 크기로 봉긋한 찐만두 모양인데, 반으로 썰어보면, 그 속이 참 재미있다. 하얗게 씌운 쌀가루 피, 연두콩으로 색을 낸 흰팥, 붉은콩으로 색을 낸 흰팥, 그리고 붉은 팥과 밤 한 톨이 다섯 겹의 매력을 한 입에 선물한다. 반으로 가른 단면만 보면 우리네 무지개떡과 비슷한 색감이지만 맛은 더 달다.
만주보다 떡을 좋아하는 나는 찹쌀로 빚어 벚꽃잎으로 싼 ‘도묘지’가 더 맛있다. 도묘지는 찹쌀을 빻아 말린 것으로 재료 이름이 그대로 떡 이름으로 불린다. 찹쌀 알갱이 씹는 맛이 좋고, 은은한 향기가 품위 있으며, 겉을 싸고 있는 꽃잎은 살짝 염장을 해서 단맛과 짠맛의 묘한 어울림을 이룬다. 요 500원 동전 만한 이쁜 것에 진한 녹차를 곁들여 먹으면 입 안에 꽃이 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런 맛을 몇대째 만들고 있는지 여쭈었더니, 무려 24대째라고. 헉!
■ 닌교야끼
닌교초에 들른 이들은 모두 인형 모양의 오방떡인 ‘닌교야끼’를 꼭 먹고들 온다. 낱개로도 살 수 있고, 봉지로도 포장되어 있다. 가게 앞은 과자를 사려는 사람들로 언제나 붐빈다.
틀에 반죽을 붓고, 팥소를 넣은 다음 다시 반죽을 붓고 구워서 돌려 익히는 방식. 붕어빵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그 크기가 밤톨 만하고 게다가 앙증맞은 인형 얼굴 모양이라 더 인기가 있는 듯. 다이쇼 6년 즉 1917년부터 만들고 있으니 어쨌든 100년 가까이 스테디셀러다.
카스텔라 맛의 반죽도 맛있지만 비결은 소에 있다. 일본 과자의 반 이상이 팥을 이용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닌교야끼 속의 팥소는 그 맛이 다르다. 아카시아꿀의 맛도 은은히 맴도는 것 같고, 푹 삶아 체에 내린 팥은 한없이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팥 양갱을 씹는 것 같은 무게감도 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아, 이럴 땐 정말 내 짧은 필력이 원망스럽다.
■ 외할머니의 약밥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났건만 할머니의 눈매, 미소와 말투는 ‘전수’(할머니가 자주 쓰시던 표현) 생각난다. 기억 속의 외할머니가 사라지지 않는 건 외할머니의 레시피를 재현할 때마다 엄마에게서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일거다. 외할머니가 담그던 김치, 외할머니가 만들던 찬을 먹으면 남동생과 나를 앉혀두고 참외를 깎아주시던 그분이 떠오른다.
엄마가 미처 배워두지 못한 메뉴가 딱 하나 있다. 바로 ‘약밥’. 까만 캐러멜 소스와 간장을 적당히 배합하여 만들던 외할머니식 약밥을 엄마가 도시락에 싸 가는 날이면, 반 전체가 난리법석이었다는데.
“엄마는 밥을 꼭 두 번씩 쪘는데, 소스 맛을 깊이 들인다고 가마솥에 중탕으로 했지. 그 정성이 말도 못했어”라고, 나의 엄마는 당신의 엄마를 추억한다. 후세에 전수되는 것은 맛 자체나 만드는 방법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 맛을 만든 사람의 목소리나 향기, 그 메뉴를 먹던 시대의 정서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런 의미에서 뉴욕의 5번가에 당당히 위치한 일본식 화과자 부티크, 파리의 콩코드광장 옆 골목에 있는 일본 양갱집 ‘토라야’가 부럽다.
만약 할머니의 약밥을 엄마가 배웠더라면, 그 맛에 감동받은 내가 비법을 전수받았더라면? 나도 세월이 깃든 전통 후식 가게를 열 수 있었을까? 입 맛 변한 세대가 외제 커피를 밥값 주고 사 마시는 시대에, 간장과 흑설탕으로 졸인 밥을 꿋꿋이 만들어 나갈 수 있었을까? 의문만 잔뜩 남는다. 이번 주말에는 낙원동 떡집에라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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