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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장편 '나가사키 파파' 낸 소설가 구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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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장편 '나가사키 파파' 낸 소설가 구효서

입력
2008.03.2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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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효서씨가 장편 <나가사키 파파> (뿔 발행)를 냈다. 단편집 <시계가 걸렸던 자리> (2005)를 낸 지 2년 반만이고, 장편으론 2000~2002년 ‘이별 연작’으로 매해 발표한 <정별> <몌별> <애별> 이후 6년만이다. 1987년 등단 이래 장편 14편, 단편집 8권, 산문집 2권을 펴낸 작가의 왕성한 창작 이력에 비춰볼 때 이례적으로 늦은 신간 소식이다. 구씨는 “2년 가량 라디오 방송 진행을 맡다보니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없었다”며 “올해 말에 경장편, 내년엔 긴 분량의 장편을 낼 계획”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일본 나가사키의 요리점 ‘데지마 와프’에서 일하는 21세 한국 여성 ‘한유나’. 10대 시절부터 홀어머니를 등지고 살아온 그녀는 생부(生父)를 찾으려는 일념에 바다를 건넜다. 그 사실을 알아챈 어머니는 그녀에게 아버지의 진실을 알리는 메일을 보내온다. 이야기는 주인공의 아버지 찾기를 축으로, 그녀 주변 인물들의 사연과 어머니의 서신이 씨줄날줄로 엮이면서 진행된다.

등장인물-대개 유나의 직장 동료-은 거개가 일본 사회의 주변적 존재다. 일본 원주민 ‘아이누’ 출신으로 자폐적 삶을 살아가는 일급 요리사 ‘쓰쓰이’, 부락민(천민 집단 거주지) 출신 여성을 사랑하는 식당 지배인 ‘오오카’, ‘조선’ 국적을 고집하는 아버지와 불화를 겪는 재일동포 3세 ‘미루’ 등등.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주류사회로부터 배척받는 이들의 삶터가 일본 개항 역사의 전초라 할 수 있는 나가사키란 점은 의미심장하다. 혼종(混種)의 땅에서 되레 차별받는 혼종적 존재들. 여기에 주인공의 생부 추적은 (어머니에 의한) 반전에 (지인에 의한) 반전을 거듭하며 ‘아버지’란 존재의 정의 자체를 전복한다.

구씨는 이 소설이 ‘큰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혈연적 존재인 아버지가 이념적으로 확대되면 가족, 고향, 민족, 국가라는 ‘큰아버지’가 된다. 이 큰아버지들은 소수를 희생시키며 자기 동질성을 유지한다. 그런 폭력적 권위는 우리의 아버지들을 통해 실현된다.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큰아버지의 홍위병처럼 살아온 그들 역시 희생자 아닐까.”

묵직한 주제를 결코 무겁지 않게 풀어나가는 구씨의 관록이 빛난다. 데지마 와프 사람들은 그리 심각한 포즈를 취하지 않고도 개인적 고민과 사회적 차별을 이겨내는 제가끔의 해법을 찾아간다. 무엇보다 아버지 부재의 고통을 극복하고 주변 동료들의 상처까지 넉넉히 감싸 안는 유나는 단연 매력적인 헤로인(heroine)이다.

“이전의 아버지라는 이름은 저한테서 죄다 지워졌어요. 없어졌어요. 싸악. 그리고 제가 새로 이름을 지은 거예요. 아, 버, 지, 라고. 강요된 호명이 아니라 자발적 호명. 아버지니까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라 불려서 아버지인 아버지.”(292쪽) 마침내 찾아냈으나 생부가 아닌 것으로 판명된 남자를 유나가 ‘아버지’라 부를 때 소설은 ‘큰아버지 사회’ 너머로 제법 멀찍한 전망을 제시한다.

대사와 지문의 경계를 뭉갠, 구어체의 리듬감을 살린 감각적 문장은 소설 읽기의 또다른 묘미다. 구씨는 “근엄하고 체계적ㆍ논리적인 문어체를 고집하는 소설가도 어쩌면 독자의 사고를 지배하려 드는 또다른 ‘큰아버지’ 아닐까 싶었다”며 이 독특한 문장 운용의 이유를 밝혔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사진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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