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소련 볼가강 유역의 스탈린그라드(현 볼고그라드). 독일군의 파상공세에 고전하던 소련군에 사기를 올려줄 목동 청년이 나타난다. 이름은 바실리 자이제프(주드 로). 소련군 선전장교 다닐로프(조셉 파인즈)가 저격수로 발탁한 그는 단 한번의 실수도 없는 사격솜씨로 독일 장교들을 쓰러뜨려 '영웅' 이 된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실존인물이다. 지금도 볼고그라드 역사박물관에 보존된 그의 모신나강(Mosin Nagant) 소총에 죽은 독일군은 장교 50여명을 포함해 476명. 에너미>
▦영어로 스나이퍼(Sniper)인 저격수는 도요새에서 나온 말. 날쌔기 그지없는 도요새를 잡는 사람에게 영국장교들이 붙인 별명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영국이 1차 대전 최대 저격 피해자였다는 사실이다. 영국군 장교 전사자 중 독일 저격수에 의한 것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저격수의 첫째 조건은 뭐니뭐니 해도 뛰어난 사격능력. 정확한 눈, 냉정한 순간 상황판단, 민첩한 행동이 요구된다. 두 번은 없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에서 어린 바실리에게 늑대사냥을 가르친 아버지의 말처럼 존재가 노출되면 곧바로 적의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에너미>
▦2차 대전에서 또 한 명의 전설적 저격수는 핀란드의 시모 하이하. 1939년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한 겨울전쟁에서 무려 542명을 저격한다. 특히 핀란드인들이 '콜라의 기적'이라 부르는, 불과 소대원 32명과 함께 참가한 게릴라전에서 전체 소련군의 10분의 1인 400명을 저격했다.
영하 30도가 넘는 혹한 속에서 흰 파카만 입어 '하얀 악령(White Devil)'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바실리와 달리 은폐가 쉽다는 이유로 망원 조준경을 달지 않은 그냥 소총을 사용했다. 그만큼 눈이 좋다는 얘기다. 그 역시 목동 출신이다.
▦아군에게는 '영웅', 적에게는 공포의 대상인 '저격수'는 '나팔수'와 함께 정치에도 곧잘 등장한다. 이름까지 거론하며, 무능하고 노무현 좌파정권 색깔을 가진 산하단체장의 사퇴를 연일 강도 높게 요구하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도 '저격수' 라는 말을 듣고 있다.
그의 요구에 반발하는 일부 언론, 문화ㆍ시민단체들이 다분히 부정적인 의미로 붙였다. 놀라운 것은 저격수라고 해놓고, 그의 총(말)에 쓰러지지 않고 악착같이 버티는 적들이다. 하긴 그 저격수가 좀 서투르긴 하다. 진짜 저격수는 은밀하게, 단 한번에 상대를 쓰러뜨리는데.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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