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필수품 50개 품목의 물가를 집중 관리해라!’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지식경제부 업무 보고에서 내린 ‘지령’이었다. 50개 품목을 집중 관리하면 전체적인 물가는 상승해도 이들 품목은 그에 비례해 올라가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불똥을 맞은 기획재정부 물가정책 라인은 부랴부랴 움직였다. 당장 50개 품목 선정 작업에 착수했지만, 몹시 난감한 표정이었다. 한 관계자는 18일 “품목별로 가격을 통제할 권한도 없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솔직히 당혹스럽다”고 했다.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하는 물가에 시름하는 서민들에게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매우 달콤하다. 대통령이 서민 입장에 서서 생필품 물가를 잡아주겠다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고 외치기라도 해야 할 듯하다.
헌데, 입에 단 것이 몸에는 좋지 않은 법이다. 당장 서민 부담이 줄어들지는 몰라도, 길게 보면 우리 경제에 독이 될 소지가 많다. 대통령의 주문에는 물가가 통제 가능한 대상이라는 반(反)시장적 인식이 깔려 있다. 정부에는 업계에 원가가 올라도 상품 가격을 올리지 말라고 종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친 시장을 외치는 정부가 시장 경제 논리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것이고, 규제 완화를 주창하는 정부가 가격 규제를 덧씌우는 격이다. 마치 1970대식 ‘완장’이 다시 등장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가 안정을 바라는 대통령의 진심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 해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가를 통제해 업계가 입게 될 손실은 정부가 보상해 줄 수도 없고, 무리한 억누르기는 일순간의 물가 폭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통제는 “정부가 시장보다 우선한다”고 믿는 개발독재 시대에나 가능한 조치다.
이영태 경제부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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