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말 그대로 사람이 산에 오르는 짓거리이며, 놀이적인 요소와 스포츠적인 특성이 있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놀이도 스포츠도 아니다. 스포츠는 경쟁상대와 경기규칙이 있고, 관객과 심판이 있으며 순위와 포상이 따르는 행위다.
그렇지만 등산은 틀에 박힌 규칙도 경쟁상대도 없다. 그 상대가 대자연 속의 산일뿐이다. 또한 우열을 숫자로 표시하여 순위를 기록하는 심판도 박수를 쳐줄 관객도 없다. 단지 자연을 상대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보상이 없는 짓거리가 등산이다.
많은 돈과 땀을 투자해 목숨마저 걸고 어렵게 오른 산일지라도 그 대가로 정상부분의 토지 소유권을 넘겨받는 일이 없는 것이 등산이다. 단지 무상(無償)의 정복자(征服者)라는 이름만이 남겨질 뿐이다.
지구가 생긴 이래 등산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사람이 오른 첫 산이 알프스의 몽블랑이다. 222년 전인 1786년의 일이다. 당시 발마와 빠가르라는 프랑스사람이 몽블랑을 최초로 올랐지만 꼭지 점의 소유권은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채 최초의 정복자라는 이름만 역사에 기록되었을 뿐이다. 아마도 등정자에게 땅 소유권을 인정하는 제도가 생긴다면 땅 투기꾼들이 벌떼처럼 산으로 몰려 올 것이며, 베이스캠프는 부동산 중개업소로 성시를 이룰 것이다.
적어도 등산은 두 선수가 100m트랙에서 육상경주를 하듯이 맞상대를 하며 순위를 다투지 않는 것이 다른 운동과도 구별된다. 히말라야 14고봉을 놓고 완등 경주를 벌였던 라인홀드 메스너와 예지 쿠쿠츠카를 놓고 메스너가 쿠쿠츠카보다 몇 개월 앞서 완등을 했다하여 메스너를 제1인자, 쿠쿠츠카를 제2인자라고 순위를 두어 구분하지 않는 것이 등산이다.
오늘날 세계 최강의 등반가 자리에 우뚝 서있는 메스너와 쿠쿠츠카 두 거인이 남긴 큰 자취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메스너는 유럽의 전통적인 선진문화권의 풍요로운 환경과 성숙된 등산문화권에서 활동한 덕분에 여러 스폰서들의 지원에 힘입어 넉넉한 여건 속에서 등반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쿠쿠츠카는 동구권 폴란드의 낙후한 사회 환경과 뒤처진 등산 환경 속에서 몸으로 때우는 식의 등반을 해왔다. 어느 때는 입산료를 아끼려고 폴란드 K2 여성원정대에 불청객으로 꼽사리 껴서 K2 허가증으로 브로드피크를 무단으로 올랐다가 파키스탄 관광성에 들켜 2,000달러의 벌금을 무는 수난을 당하기도 한다.
돈을 아끼려다 결국 정상에 오르는 등산 허가요금 만큼의 비용을 빼앗긴 것이다. 그는 메스너보다 9년이나 뒤늦게 출발한 시점에서 선두주자인 메스너를 추격해 11개월 늦게 14봉 완등을 마무리했으니 그 놀라운 추진력과 집념에 갈채를 아끼지 않을 수 없다.
두 거인의 연보를 살펴보면 메스너는 1970년에 시작하여 1986년 로체를 마지막으로 14개 고봉을 완등하기까지 16년이 걸렸으나, 쿠쿠츠카는 1979년에 출발하여 1987년 시샤팡마를 마지막 봉으로 마무리할 때까지 8년이 걸렸다. 메스너가 14개 고봉 완등을 끝내고 불과 몇 개월 뒤 쿠쿠츠카가 완등을 마무리하고 돌아오자 한통의 축하전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은 제2인자가 아니다. 당신은 참으로 위대하다.” 메스너가 경탄하면서 보낸 축하 인사였다.
쿠쿠츠카는 한국 산꾼들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그가 히말라야에서 조난했을 때 우리 원정대가 도와 준 일이 있었다. 1986년 그가 K2 남벽으로 정상을 밟고 하산하던 중 동료 1명을 잃고 3일 동안 굶주린 상태로 길을 잃고 헤매다 캠프3에서 한국 K2원정대(대장 김병준)송영호 대원의 보살핌을 받아 허기를 채우고 동상치료를 받은 후 줄을 함께 묶고 그의 안내로 베이스캠프(B.C.)까지 무사히 귀환한다. 당시 쿠쿠츠카가 오른 K2는 11번째의 8,000m 봉이었다.
또한 등산이 스포츠가 아니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람도 메스너다. 1988년 캘거리에서 동계 올림픽대회가 열렸을 때 IOC 위원회가 지구상의 8,000m 고봉 전부를 싹쓸이 한 공로로 두 사람에게 은메달을 수여했다. 그러나 메스너는 수상을 거절하면서 “등산은 순위를 비교해서 채점표에 나타내는 스포츠 경기 같은 것이 아니다” 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만일 그가 메달을 받았다면 등산이 스포츠라는 사실을 받아드리는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 고미영과 오은선은 대중들의 관심 속에서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고봉 14개를 목표로 험난한 트랙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리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언론이 부추기는 경쟁적 분위기에 휩쓸려 다투듯이 과도한 경쟁을 벌이며 소모전을 치르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선의의 경쟁이라는 허울 속에 다툼의 날을 세우는 일은 자신도 해칠 수 있으며 알피니스트답지 않은 태도이다. 두 사람 모두 알피니즘의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점을 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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