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몰락한 월가 5위 투자은행(IB) 베어스턴스의 망령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장은 차기 희생양을 찾고 있다. 대부분 IB는 크고 작은 부실자산에 노출돼있고 주가도 일제히 폭락하는 등 파멸의 불씨를 안고 있어, 누군가의 혀끝에서 시작된 흉흉한 소문이 증폭돼 기름을 부으면 누구든 '제2, 3의 베어스턴스'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이다.
'살생부'최상단에 이름이 오른 곳은 미국 4위 IB인 리먼브러더스. 서브프라임 모기지 노출이 특히 많은 곳이다. 베어스턴스의 뒤를 잇지 않겠냐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주가가 지난 주말 15% 하락한데 이어 17일(현지시간) 한때 35%나 빠지기도 했다.
이런 시장분위기를 반영하듯, 무디스는 이날 리먼브러더스의 신용전망을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한단계 내렸고 UBS 역시 신용전망을 '중립'으로 낮췄다.
구원의 손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이체방크는 이날 "리먼브러더스는 베어스턴스와 다르다"며 "유동성도 풍부하고 비즈니스도 다양하고 경영진도 경험이 풍부하다는 차이점이 리먼의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두둔했다.
이를 뒷받침할 근거로 리먼브러더스가 최근 JP모건과 씨티뱅크 등 은행 40여곳이 참여한 가운데 20억달러를 무담보로 확보한 점 등을 꼽았다. 18일 리먼브러더스의 1분기 실적발표가 생사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최대 선물ㆍ옵션 중개업체인 MF글로벌도 이날 주가가 거의 반 토막 나면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마켓워치는 "MF 글로벌이 베어스턴스에 이어 유동성 위기의 희생양이 될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고 전했다.
도산까지는 아니더라도, IB전체가 베어스턴스 망령에 시달리고 있다. HBOS UBS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씨티 등도 굴지의 IB들의 주가는 이날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한 애널리스트는 "또 다른 은행이 유동성 위기에 넘어질 것이란 우려가 투자자 사이에 확산되기 시작하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콧대 높던 월가의 IB들이 전형적인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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