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16일 오후 휴대폰 도ㆍ소매 매장이 몰려 있는 서울 용산역 부근 현대아이파크몰 8층. 휴대폰 신제품을 구경하려는 손님들보다 매장을 지키는 직원들 숫자가 훨씬 더 많다. 간간히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손님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여기저기서 손뼉을 치며 호객하는 고함소리가 매장을 짓누르는 적막감을 깨울 뿐이다.
비슷한 시각, 현대아이파크몰과 굴 모양의 다리로 연결된 터미널 상가. 전자사전과 디지털카메라, MP3, 내비게이션 등 각종 정보기술(IT) 기기를 파는 영세업체 직원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구애의 목소리를 높여 보지만, 고객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3월 신학기에 주말인 점을 감안하면 '대목' 기간인데도, 예전처럼 IT 기기를 찾는 학부모와 학생들로 북적이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휴대폰과 컴퓨터(PC) 등 각종 전자제품 유통의 메카로 알려진 용산 전자상가가 위기를 맞고 있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인터넷 쇼핑몰 활성화가 주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소비자들의 전자제품 구입 행태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어 영업환경은 갈수록 악화할 전망이다.
현대아이파크몰 내 휴대폰 매장은 오픈(2004년 10월) 초 140여 개로 출발했으나, 올 들어 급격히 줄어들더니 현재 80여 개만 남았다. 그나마 입주 매장들도 다른 지역으로 옮기거나 직종 전환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상황이다. 이날 휴대폰 매장을 정리한 강인권 정텔레콤 사장은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아 다른 지역으로 사업장을 옮길 예정"이라며 "휴대폰 사업을 계속해야 할지도 고민"이라고 푸념했다.
데스크톱 등 노트북과 PC 주변기기, 가전제품을 취급하는 매장에도 고객들의 발길이 뜸했다. 24년간 PC 주변기기 매장을 운영해온 김용해 플러스정보시스템 대표는 "청계천 시절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PC 주변기기를 취급하고 있지만, 요즘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며 "각종 할인용 쿠폰을 적용해 싼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마켓에 눈 높이가 맞춰져 있기 때문인지, 오프라인 매장에 와도 구경만 할 뿐 실제 물건을 사지 않는 고객들이 많다"고 최근 분위기를 설명했다. 한 가전제품 매장 주인은 "관리비를 포함해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에 이르는 가계 임대료도 큰 부담이 된다"고 했다.
용산역 인근 터미널상가나 나진상가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 전자사전이나 디지털카메라 등을 취급하는 유통업체는 입학시즌을 맞아 '특수'를 기대하고 많은 물량을 비축해 놓았으나, 오히려 경영 압박을 초래하는 골치거리 재고로 둔갑할 처지에 놓였다.
김정환 용산전자단지 협동조합 이사장은 "IT 기기 유통가격 질서는 이미 무너졌고 전자상가 전체가 물류창고로 변한 것 같다"며 "정부 차원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용산 일대 전자상가에 입주한 3,000여 개 영세 점포들은 연쇄도산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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