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진(11) 우예슬(9)양을 유괴ㆍ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정모(39)씨는 상당히 침착하고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씨 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한 수사관은 18일 “정씨는 검거 직후 조사받을 때부터 당당한 태도를 보였으며, 살인을 시인한 지금까지도 침착하게 답변을 하고 있다”면서 “일반 잡범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안양경찰서 수사본부는 정씨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석사 출신 심리분석가 2명을 투입했다. 정씨는 그러나 전문 수사관들의 계속되는 설득과 회유에도 불구, 경찰이 만족할 만큼 진술 속도를 내지 않은 채 간간이 답변을 이어가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특히 정씨가 경찰 조사 와중에도 자신이 혜진양과 예슬양을 유괴ㆍ살해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교통사고를 내 숨지게 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에게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사건 내용을 바꾸려고 시도할 만큼 머리가 비상하다고 밝혔다. 최고 사형까지도 가능한 살인과 미성년자 약취ㆍ유인 혐의가 아닌,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되는 교통사고를 택한 점, 자신이 마침내 진실을 밝히는 듯한 인상을 풍기기 위해 조사 초기에 고의적으로 횡설수설 진술을 한 점 등이 경찰이 그같이 판단하는 근거다.
이와 관련, 정씨는 검거되기 전부터 ‘만약의 사태’에 철저히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정씨 집에서 확보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분석한 결과, 정씨는 ‘머리카락은 썩는가’ ‘호매실 IC’ ‘토막’ 등 이번 사건과 관련된 단어를 상당히 많이 검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정씨가 언론 보도를 통해 경찰의 수사 진척도를 점검하며 자신에게로 수사망이 좁혀오는지 살펴보고, 검거에 대비해 꼼꼼하게 관련 지식을 습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2004년 7월 군포 전화방 도우미 정모(당시 44)씨 실종사건 때 유력한 용의자로 긴급체포 됐다 무혐의로 풀려난 적이 있는 정씨가 당시 경험을 통해 ‘증거가 있어야 범행사실이 인정된다’는 증거주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범행에 사용한 흉기나 범행 장면이 녹화된 CC(폐쇄회로) TV 녹화장면 등 직접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이 번에도 풀려날 수 있다는 한가닥 희망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정씨가 사건 발생 후 태연하게 생활해온 점도 이 같은 자신감이 바탕이 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정씨는 순탄치 않은 성장기를 거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살아온 그는 27살이 돼서야 모 전문대에 입학, 5학기 만에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 수리공으로 일하는 등 이 일 저 일을 하며 지내다 2002년 지금의 주거지로 옮겼으며, 2년 전 동거녀를 병으로 잃는 아픔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집세가 밀려 낮에는 컴퓨터 수리공,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정씨는 자신의 집 컴퓨터에 음란동영상을 700여건이나 저장해 놓았으며, 이 가운데는 이른바 ‘롤리타’와 같은 어린 소녀가 등장하는 포르노물도 있어 이번 두 여아 유괴ㆍ살해사건과의 관련성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정씨는 본드도 흡입했던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정씨는 평소 조용한 성격으로 인사성도 밝았다. 집주인(43)조차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인상도 좋고 인사성도 밝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정씨는 그만큼 철저히 자신에게 내재돼 있는 마성(魔性)을 숨긴 채 이중적 생활을 해온 셈이다.
이범구 기자 goguma@hk.co.kr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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