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이슬람 율법으로 국가를 통치하던 탈레반 세력이 축출된 아프가니스탄에서 새로운 문화예술의 훈풍을 불게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던 첫 여성 팝스타의 탄생이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현지의 TV 아이돌 선발 프로그램 '아프간 스타' 결선에 진출한 3명 가운데 한 명으로 우승까지 노렸던 여자 가수 지망생 리마 사하르가 결국 '높은 전통의 벽'을 뛰어 넘는 데 실패했다.
CNN 방송과 AP 통신 인터넷판이 17일 전한 바에 따르면 올 20살의 사하르는 미국 인기 TV쇼 '아메리칸 아이돌'의 현지판 '아프간 스타' 예선에 몰려든 2,000명과 치열한 경쟁 끝에 3명이 나서는 결선에까지 올랐다.
세 번째를 맞은 대회에서 여성 응모자가 거둔 최고의 성적은 5위로 사하르가 이번에 결선에 진출하면서 기록을 경신했다. 그와 함께 결선을 치른 다른 2명은 청년들로 21살의 하미드 사키자다, 19살의 라피 나브자다이다.
사하르 등 3명은 지난 14일 밤 톨로TV 스튜디오에서 방청객과 심사위원 3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노래 실력을 뽐낸 뒤 시청자들이 보낸 문자 메시지 투표를 통해 순위를 가렸다.
최종 결선이 열리기도 전에 이번 프로그램의 우승자가 재능이 아니라 어느 부족 출신이냐 혹은 남자냐 여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여성인 사하르가 탈락해 3위에 머물러 이런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사하르가 파슈툰인이고 두 남자 경쟁자는 각각 하자라와 타지크인이다.
하지만 사하르는 "이번 결과에 아주 만족한다. 3위라는 성적도 그만큼 많은 시청자가 내게 표를 주었다는 점에서 영광이다. 진심으로 그들에 감사하면서 축복도 함께 보낸다"고 밝혔다.
'아프간 스타'에서 사하르가 예선부터 파죽지세로 인기몰이를 하자 보수세력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보수파의 아성인 성직자협의회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에게 "아프간의 현재 상황에선 여자 가수가 필요 없다"고 항의하는 등 압력을 가했다.
탈레반 정권은 2001년 쫓겨날 때까지 여자가 혼자 문 밖 출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는 이유로 음악과 TV 방송도 금지시켰다.
새로운 친서방 정권이 들어선 3년 전에도 그런 풍토는 남아 외국 음악과 패션 등을 소개하던 여성 TV 사회자가 '너무 나댄다'는 이유로 피살돼 충격을 준 바 있다.
사하르가 속한 파슈툰족은 원래 보수성향이 제일 강한 부족이고 그는 탈레반 반군의 영향력이 미치는 칸다하르에서 태어났다. 때문에 고향에선 "파슈툰족 여성이 TV에 나와 노래를 부르는 것은 우리 문화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반면 주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아프간 스타'가 열악한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프로그램 사회자 다우드 사디키는 '아프간 스타'의 히트로 아프간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세계에 어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하르를 포함한 3명은 최종결선을 치르기 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파란색 스카프로 머리를 감싼 사하르는 아프간의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여성 지위의 향상은 있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고통 없이는 뭔가를 얻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선 예술가가 역사적, 문화적인 존재였다. 나는 아프간 사람들의 투표로 이 자리까지 온 것"이라고 호소했다.
최종결선에 오른 하미드 사키자다와 라피 나브자다는 21일 우승을 놓고 맞대결을 펼치게 된다. 우승자는 아프간에선 대저택이랄 수 있는 5,000달러 상당의 집을 부상으로 받고 음반까지 취입, 본격적인 가수활동에 들어간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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