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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고소영'현상의 사회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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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고소영'현상의 사회심리학

입력
2008.03.1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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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4일자에 한국일보 강병태 수석논설위원이 쓴 <'고소영' 논란의 사회심리학>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흥미롭게 읽었다. 감사의 뜻으로 그 칼럼의 논지를 발전시켜 보고자 한다. 강 수석논설위원은 "청와대 수석에 고려대와 영남 출신, 소망교회 신도 몇몇이 들어 있다고 '고소영' 편중을 떠든 것은 생뚱맞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수석과 장관 후보 24명 가운데 고대 출신이 4명으로 서울대 11명인가 다음으로 많다는 지적은 도대체 뭘 얘기하는지, 인지능력이 의심스럽다. 한신대 윤평중 교수가 칼럼에서 논평한 '서울대 독점'을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우리사회 엘리트 조직에서 고대 출신 비율이 그 정도면 평균 아래일 것이다."

■ 서울대 편중은 지적하지 않고

이 주장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고소영'을 외친 이들이 "사회의 뿌리깊은 연고의식과 편견을 자극해 일깨우는 작용을 노렸다"거나 "스스로 의식 깊이 박힌 연고의식과 이기적 동기가 발동했으면서도, 공공을 위한 비판인 양 가장한 것이다"는 해석은 좀 지나친 것 같다.

「한겨레 21」(2월 28일자)의 세밀한 분석에 따르면, '고소영'은 이전 정권들과의 상대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그렇게 말한 만한 최소한의 근거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소영'이라는 작명은 인사 통계 상의 문제를 떠나 기존 관행을 따르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와 더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한겨레 21」이 2002년 6월(서울시장 취임)부터 올 1월까지 이명박이 기독교와 고려대 관련 행사에 참여하거나 기여한 횟수를 찾아봤더니, 기독교 관련 공식 행사 참여 횟수는 50회, 고려대 관련 행사 횟수는 44번이었다.

양쪽 행사 참여 횟수를 합치면 모두 94회로 매월 평균 1.4회인 셈이다. 여기에 '서울 봉헌' 발언과 '고려대 전체의 기독교화'를 소망한다는 발언으로 대표되는 설화(舌禍)가 가세했다. 고려대 교우회의 요란한 지지 행보도 고려대를 부각시키는 데에 일조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강 수석논설위원이 지적한 것처럼, 서울대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고려대'를 들먹여 '고소영' 운운하는 게 온당한가 하는 점이다.

즉, 서울대 출신의 요직 독과점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그 다음 단계에서 벌어지는 대학 간 경쟁에서의 상대적 약진을 대대적으로 부각시켜 사실상 서울대 독과점 문제를 은폐하거나 희석하는 효과를 내는 게 공정한가?

이건 의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좀 다른 이유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흔히 '한국사회의 3대 마피아 집단'으로 고려대 교우회, 호남 향우회, 해병 전우회가 거론된다. 이걸 주제로 글을 쓴 어느 언론인은 "마피아라고는 하지만 '사회악'이라는 의미는 담겨 있지 않다. 자기들끼리 뭉치는 힘, 정확히 말해 놀라운 결속력 때문에 마피아라는 별명이 붙은 것 같다"고 했다.

이 '3대 마피아' 담론은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과 그 한계를 말해 준다. 원래 1인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마피아 행위도 은밀하게 한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법칙으로 말없이 다른 집단을 차별하기 때문에 훨씬 더 무섭다. 반면 '넘버 투'나 '넘버 쓰리'는 한 단계 도약을 위해 몸부림치느라 요란하다.

■ 어울리지 않는 말 그만 썼으면

고려대를 서울대, 호남을 영남, 해병을 육군과 비교해 보라. 집단으로서 누리는 권력이 비교가 되는가? 마피아 행위의 역기능에 주목한다면, 서울대ㆍ영남ㆍ육군을 문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최고 권력을 문제 삼는 건 재미가 떨어지기도 하지만, 이들의 마피아 행위가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만하게 입에 올리기 좋은 게 시각적인 볼거리를 자주 제공하는 고려대ㆍ호남ㆍ해병인 셈이다.

고소영씨께도 미안한 일이니, '고소영'이라는 말은 그만 쓰는 게 좋겠다. 아니면 '서소영'이라고 하든가.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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