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은 스트레스 때문에 일찍 죽는다고들 하더라구요…그래도 꼭 하고 싶은 일을 했기 때문에 여한은 없습니다.”
공자, 두보로부터 박세리, 보아, 이명박까지 한중일 고금(古今)의 명사들의 인명을 집대성한 <한중일 서명사전> 의 저자 문창호(53)씨는 “하루 12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철야를 예사로 했던 지난 6년간의 세월이 꿈만 같다”고 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이 사전에 실린 인물은 줄잡아 6만명. 20만개에 이르는 명사들의 호와 별칭, 출생지, 직업 등을 가나다 순으로 정렬해 놓았다. 2,8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자료정리에 소요된 종이가 1만5,000장이 넘는다. 한중일>
중학교 시절 동양화의 매력에 빠져들어 서화가인 우암 오재수 선생을 무작정 찾아가 서예와 한문을 배우긴 했지만 문씨는 대학(성균관대 통계학과)을 졸업한 뒤에는 대기업에 들어가 20여년간 평범한 직장인의 길을 걸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서화나 골동품들을 사들이면서 관심을 놓지 않았지만 그가 이 ‘무모한 작업’을 결심하게 된 것은 1998년께다. 명예퇴직 여파로 직장을 떠나면서 퇴직금으로 고서화 감정회사를 차렸다.
단순한 취미에서 직업이 되다 보니 제대로 된 서명사전의 필요성을 느꼈고 2002년부터 본격작업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서화 등 옛 전적에 남아있는 낙관이나 흔적으로 그 주인공을 찾기 위한 필요에서 시작해 20세기 초반까지는 문인ㆍ서화가 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내친 김에 독립운동가ㆍ정치가ㆍ운동선수ㆍ대중가수 등 현대를 살고 있는 각계 명사도 대상에 포함시켰다.
돈 벌겠다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그는 “가족들에게 미안할 뿐”이라고만 했다. 6년 동안 설과 추석 말고는 집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고 봉천동의 15평 짜리 사무실에서 새벽 3, 4시까지 자료검색, 입력 작업을 했다. 나중에는 눈이 흐려져 작업시간을 줄여야 했을 정도다. 2년간 5,000만원 정도로 생각했던 예산은 점점 늘어, 6년 동안 퇴직금으로 사두었던 땅 6,000평도 팔고 이촌동의 작은 아파트까지 담보 잡혀야 했다.
사전편찬 과정에서 수많은 명사들의 서명을 접하며 문씨는 “동양의 미덕이란 겸양의 미덕임을 자연스럽게 알게됐다”고 전했다. 학문적으로 일가를 이뤘으면서도 스스로를 거북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다는 뜻의 장육거사(藏六居士)라 부른 조선초의 문인 이별이나, 밭이나 갈며 숨어사는 이라고 말한 포은(圃隱) 정몽주, 낙엽이나 쓸어담는 노인이라는 뜻의 소엽거사(掃葉居士)로 칭했던 중국의 문인 연정길 같은 이가 그렇다.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양화, 서예 작품들의 위작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이 사전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감정의 기본자료로는 쓸만할 것”이라는 문씨는 “앞으로는 이 사전에서 부족했던 일본 명사들의 사례를 추가한 개정ㆍ증보판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사진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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