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에 나온 독립신문은 창간사에서 ‘편벽되지 아니한 고로 무슨 당파에도 상관이 없고, 조선만을 위하여 공평히 대언하여 주려 한다’고 밝혔다. 불편부당(不偏不黨)하게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 공론 형성에 이바지하겠다는 창간 취지를 읽을 수 있다. 독립신문 이후 우리나라에서 여러 신문이 나오지만 창간사를 관류하는 것은 바로 이 불편부당과 시시비비 정신이다.
■ 이미 사자성어 놀음 된 불편부당
우리나라에서 일부 언론학자는 불편부당과 시시비비를 중시하는 언론정신이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창도한 새로운 흐름에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독립신문을 낸 서재필 선생이 미국에서 오래도록 생활하며 언론계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그런 주장의 배경에 깔려 있다.
뉴욕타임스가 창간될 무렵에 서재필 선생은 미국을 떠나 우리나라로 돌아왔지만, 뉴욕타임스가 나오기 전부터 객관주의가 이미 미국 언론계에서 세를 키워가고 있었기 때문에 독립신문의 불편부당주의가 미국 언론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가설은 그런대로 설명력을 지닌다.
우리의 불편부당 주의가 미국의 영향을 받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20세기에 미국 언론은 불편부당의 객관주의를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 놓았다. 이 새로운 저널리즘 원칙을 이끌어 온 뉴욕타임스는 사실만을 객관적으로 보도한다는 간명한 원칙 하나로 미국의 지적 공중을 사로잡았다.
막스 베버가 미국 언론을 사실의 창고(倉庫)라고 평가한 바 있지만, 미국의 그 창고가 미국사회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 이데올로기와 정파성으로 지면을 채우는 유럽 언론보다 세속적인 미국 언론의 객관주의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잠재력을 읽을 수 있다.
우리 언론은 어떠한가? 불편부당의 객관주의? 그건 서재필 선생의 독립신문마저도 뒷전으로 미루고 말았다. 독립신문은 개화파의 거점이자 전진기지였다. 독립신문은 개화파 앞잡이가 되어 개화를 위해 싸우고 또 싸웠다. 불편부당주의는 그야말로 구두선에 불과했다.
일제 하에서는 총독부의 가혹한 탄압 때문에, 아니면 발행세력의 이해관계 때문에 객관적 사실보도를 유예했다. 광복 직후에는 모든 언론이 이데올로기의 선전수단으로 떨쳐 나섰다. 좌건 우건 언론은 특정 정파의 선전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불편부당주의 대신에 정파주의가 역사 전개와 더불어 그 두께를 더해 우리 언론의 정신사를 관통하는 흔들림 없는 원칙으로 굳어졌다.
지금은? 객관주의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할 때 어떤 학생이 무례한 어투로 내뱉은 말 몇 마디가 떠오른다. 그 학생은 그런 사자성어(四字成語) 놀음은 진부하다고 쏘아붙였다. 불편부당이니 객관주의니 하는 말이야말로 우리 언론에 있어서는 천진난만한 독자를 기만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신문사나 방송국을 차리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언론인이 대선 캠프에 합류했다. 그들이 선거에 기여한 것은 거의 없다. 지난 선거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도맡았다. 그런데도 승자의 캠프에 가담한 전직 언론인 일부는 국회의원 공천을 받았고 일부는 고관대작의 자리에 올랐다. 많은 언론인들은 그들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들 입맛을 맞추는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불편부당이니 뭐니 하는 건 고리타분한 사자성어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 땅에 떨어진 신뢰 되찾는 노력을
불편부당의 시시비비 정신을 헌신짝 버리듯 하여 얻은 대가는 무엇인가? 조락(凋落)이다.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땅바닥에서 놀고 있다. 그 대가로 경영측면의 성과라도 얻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가장 잘 나간다는 신문사는 겨우 500대 기업에 턱걸이할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바탕이 무엇인지도 모를 포털 미디어에 비해도 구멍가게 처지나 다름없다. 대다수 언론사는 경영적으로 소생불능 상태에 놓여 있다.
이 절망의 시점에서 우리는 불편부당 시시비비의 그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시작하는 자에게 승리가 있을 것이다.
김민환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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