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대학살'의 밤이 지나간 14일. 한나라당엔 전날 밤의 혼돈과 탈락자들의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특히 친박근혜계가 무더기 무소속 출마 등 집단행동 움직임을 보이면서 분열의 음산한 기운이 당을 내리 눌렀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날 밤 서울 강남의 한 일식당에서 자파 탈락 의원들과 비공개 만찬 회동을 갖고 대책을 숙의했다. 친박계 좌장인 김무성 박종근 이해봉 엄호성 유기준 김태환 이인기 김재원 의원 등 8명이 참석했다. 침통하고 무거운 분위기였다.
박 전 대표는 "여러분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해도 너무 한다"는 말로 의원들을 위로했다. 박 전 대표는 "잘 되시길 바란다. 성공하시라"고도 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이 발언을 "무소속 출마할 경우 간접 지원을 하겠다는 뜻 아니냐"고 해석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만찬이 끝난 뒤 입을 맞춘 듯 "오늘은 일단 거취에 대해 구체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박 전 대표가 애정과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위로하는 자리였다"고 전했다.
김무성 의원 등 친박계 인사 10여 명은 이날 점심에도 서청원 전 대표 주재로 여의도에서 오찬 회동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이재오와 이방호가 박근혜 죽이기를 하고 있다"고 성토하며 집단 무소속 출마를 적극 검토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신당을 따로 만들 것인지, 무소속 연대로 갈 지에 대해서만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 뿐이다.
이날 탈락자들은 계파를 가리지 않고 "이대로 정치생명이 끝날 수는 없다"며 공천심사위와 당 지도부에 저주를 퍼부었다. 김무성 의원은 오전에 당사에서 회견을 갖고 "청와대와 당권 장악에 눈알이 뒤집힌 실세들의 기획ㆍ밀지 공천"이라며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등에 꽂힌 배신의 칼날이 너무도 아프다"며 잠시 눈물을 보인 그는 이내 "한나라당에 별로 공로도 없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이재오와 이방호가 박 전 대표를 몰아내고 당권을 장악하는데 장애물이 된다며 나를 몰아내려 한다"고 독기를 표출했다. 그는 "강 대표와 안강민 공심위원장, 이 사무총장이 청와대와 조율해 만든 명단대로 공천이 진행됐다"며 "자존심을 버리고 로봇, 거수기로 전락한 공심위도 반성하라"고 소리를 높였다.
유기준 의원도 이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고, 이인기 의원도 "박 전 대표를 도운 것이 이렇게 큰 죄인가"라며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친이측 권철현 이성권 의원도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아침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최고위원은 물론 친이측 인상수 원내대표, 전재희 최고위원 등도 "합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결과들이 있다"며 공천 심사에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강재섭 대표와 이방호 사무총장은 "최고위가 심사 결과를 정치적으로 수용하자"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영남권 공천 리스트가 표결에 붙여져 의결됐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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