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먹고 살던 사람이 바다를 못 나가니…. 바다가 무슨 죄가 있겠어? 이제 내 생전엔 바다에 다시 못 들어가겠지.”
섬에서 태어나 여든의 나이까지 줄곧 바다만 바라보며, 바다 덕에 살았다는 신예희 할머니의 선한 눈망울에 금세 그렁그렁 눈물이 맺힙니다.
“아들놈 대학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뭐 벌이가 있어야 돈을 마련하지. 저 바다가 애들을 다 키웠는데 이제 어떡하냐고.”
장보순(53)씨는 사고 이후로 유일한 가계 수입원인 고기잡이와 홍합 채취를 하나도 못 했다며 하소연을 합니다. 그나마 쥐꼬리만한 생계지원비도 지난달에 딱 한번 나왔다며 이러다 죽으라는 거냐고 외치는 목소리엔 그 동안 참았던 울분이 묻어나옵니다.
해안 곳곳엔 바다의 품에 안겨 푸른 꿈을 꾸었을 소라와 고둥들이 말라버린 채 파도에 밀려 이리저리 뒹굽니다. 더 이상 귀에 대면 언제나 ‘쏴~아’하며 싱그런 파도 소리를 들려주던 그런 추억을 기대할 순 없습니다. 검은 타르 덩어리에 엉긴 게 한 마리가 파도에 떠밀려 옵니다.
모래가 파헤쳐져 자갈밭으로 변한 백사장의 한 구석엔 온몸이 기름으로 덮인 뿔논병아리 한 마리가 까맣게 썩어갑니다. 그 처참한 모습에 그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유기물을 먹고 토해내며 모래를 정화시켜주던 엽낭게는 더 이상 모래를 팔 힘도 없는지 구멍을 파다 말고 한참을 가만히 있다 파도에 밀려 제 집을 잃고 떠내려 갑니다.
모래사장 곳곳에 어지럽게 얽힌 수많은 선들은 고둥들이 숨쉴 곳을 찾아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배를 뒤집은 채 생을 마친 저 숭어는 더 이상 바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바다가 꿈이고 삶이었던 이들에게 어느날 바다는 재앙이 되었습니다.
이 곳은 충청남도 태안입니다. 15일이면 원유 유출 사고를 맞은지 100일이 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한숨을 토해내고 바다의 생물들은 겨우겨우 힘겹게 생명을 유지해 나가고 있는 바로 그 태안입니다.
비릿한 바다 내음 대신 쾌쾌한 기름 냄새가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아직은 복구의 기적이 이루어졌다 말하기 힘든 채 기약 없이 현재 진행형 중인 태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독자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곳의 사람들과 생명들이 겪었을, 그리고 겪고 있는 고통과 원망을 고스란히 전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 온전한 모습은 여러분이 태안을 찾아 함께 할 때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글^사진= 김주성 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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