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12일 비위 교직원의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가 교원단체가 “이중처벌하는 꼴”이라며 강력 반발하자 이를 불과 4시간 만에 철회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전국 16개 시ㆍ도 교육청 중 맏형 격이라 할 수 있는 서울시교육청이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바꿔 교육행정의 불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설익은 정책 불쑥
시교육청은 이날 오전 11시30분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비위 행위자 명단과 사례 공개를 골자로 한 ‘2008년 맑은 서울교육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시교육청은 “법원의 판결을 받았거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 개인의 명예나 인격권 침해보다 공익이 더 중요하다 판단 될 경우 관련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비위 교직원의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내용만 놓고 보면 실제로 비위 교직원 명단이 공개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비리척결에 대한 의지와 향후 징계방향 등을 엿볼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달라”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일선 학교 교직원이나 지역교육청 직원 등의 금품 수수나 향응 등 비위행위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보고 교육청이 직접 나서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청 주변에서는 국가청렴위원회가 실시한 기관청렴도 평가에서 서울시교육청이 16개 시ㆍ도 교육청 중 최근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문 점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교원단체 반발에 꼬리 내려
구효중 시교육청 감사담당관은 “법적인 검토를 이미 끝냈고, 비위 교직원 퇴출을 위한 명분도 충분하기 때문에 명단 공개에는 큰 문제가 없다”며 자신감까지 내비쳤다. 그러나 불과 몇시간만에 이런 야심찬 계획은 브레이크가 걸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조 등 교원단체들이 “비위교직원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명백한 이중처벌에 해당하며,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시교육청은 내부적으로 긴급 회의를 열어 오후 3시30분께 “관련 단체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법적 한계 등이 있어 공개계획을 철회한다”는 군색한 변명으로 오전 발표를 뒤집었다.
명단 공개를 철회한 것은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거나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비위행위라면 당사자가 외부에 이미 알려져 있고, 해당 사례도 극히 적다는 지적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 “법리적 문제도 있지만 관련단체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실효성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와 발표를 철회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건주의" 비난 빗발
비위 교직원 명단 공개 방침이 불과 4시간 만에 ‘없던 일’로 마무리됐지만, 교원단체들의 눈길은 여전히 싸늘하다. 교원단체들은 시교육청이 현실을 외면하고 실적에 매달린 한건주의식 전시행정을 버젓이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안양옥 서울교총 회장은 “교직원을 명단까지 공개해야 될 질 나쁜 비위 집단처럼 매도해 사기를 떨어뜨리는 행정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관료주의의 병폐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꼬집었다.
교육계에서는 7월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다시 출마할 것으로 알려진 공정택 현 교육감이 무리수를 뒀다는 분석도 있다. 한 교원단체 관계자는 “명단 공개 추진 같은 대증적인 처방은 선거전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내놓은 일종의 업적 지상주의”라고 비난했다.
교직원 비위행위를 뿌리뽑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윤숙자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은 “각종 학교 비리가 제대로 드러날 수 있는 환경을 우선 조성하는 게 중요하며, 교직원 징계도 매번 ‘제 식구 감싸기’식으로 끝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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