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말했다. "어떤 집단이든 그들이 부르짖는 사회정의나 선(善)의 본질은 탐욕에 있다. 탐욕이 크면 클수록 그 정의도 거창하고 요란하다"고.
이를 지금의 한국사회에 적용해 보자. 한때 시민운동까지 했던, 사회학자 정수복 박사의 저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에서 표현을 빌려오면 '우리사회는 공식적으로는 언제나 정의를 말하지만, 진짜 그 구성원들의 속셈은 개인이나 소속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얘기다. 한국인의>
좋은 일을 한다는 시민단체에서도 구시대적 행동양식이 횡행하는 데 회의를 느껴 이 책을 썼다는 정 박사는 이 땅의 이른바 진보세력까지 반개인주의적 공동체로, 또 하나의 배타적 특권세력으로 변형되는 것을 우려했다.
불행하게도 그의 우려는 오래 전에 현실이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요즘 초대 방송통신위원장을 놓고 연일 '반대투쟁'를 외치는, 일부 언론단체까지 가세한 방송집단이다.
그들이 '사회 정의'와 '선'의 깃발로 집어 든 것은 물론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이다. 내정된 위원장이 그것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가 대통령의 멘토이고, 탐사보도팀까지 투입해 조사해 보니 전문성과 도덕성도 부족한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 겉과 속이 다른 이중윤리
사실 그들에게 '누구' '왜' 란 중요하지 않다. 대상이 누구든, 어떤 조건을 가졌든 그들은 전가의 보도인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들이대 왔다. 그리고 그 칼에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방송노조가 생긴 이래 공영방송사장, 방송위원장 임명의 역사가 증명해 준다.
단적인 사례가 2002년 2월 전국언론노조 방송위지부의 성명이다. 골자는 '전문성과 덕망과 추진력을 갖춘 인물이 돼야 한다. 자진 사퇴해야 할 상임위원이 새 방송위원장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즉각 사퇴해야 한다. 강력한 투쟁에 돌입하겠다'였다.
지금과 너무나 흡사하다. 도대체 누구였길래.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은 바로 지난 주 KBS <미디어 포커스> 에 반복 등장해 그들의 주장을 열렬히 지지한 강대인 전 방송위원장(제 1기)이다. 2, 3기 위원장인 노성대, 조창현 때도 비슷했다. 집단 이기주의자들은 목적을 위해서는 부끄러운 침묵, 정체성과 상관없이 동조세력과의 야합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디어>
마땅히 그들은 KBS 정연주 사장까지 분위기에 편승해 공사창립 35주년 기념식(4일)에서 마치 자신이 방송 독립성의 상징인 양 행세한 것에 분노해야 한다. 정 사장이야말로 전문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정치적 낙하산 인사의 상징이라고 비판해온 인물이 아닌가. 편파방송으로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고, 방만한 경영을 해온 무능한 사장이라고 욕하지 않았던가.
그들의 집단이기주의가 더욱 무서운 것은 강력한 무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독점해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고, '마녀사냥' 하듯 상대와 비판세력을 무차별 공격한다.
이미 방송의 공정성은 사회정의가 아니라, 그들만의 '독점적 정의'가 된 지 오래다.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역시 자신들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어떤 방해도 배격한다는 뜻으로 바뀐 지 오래다. 그 앞에서는 법과 절차도, 국가권력도, 이데올로기도 무력하다. 오죽하면 한때 열렬한 지지자였던 노무현 대통령까지 막판에는 개탄을 했을까.
■ 그들만을 위한 방송의 독립성
결국 그들의 목적은 하나다. 영향력과 이익의 극대화이다. 과거 자신들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강대인 위원장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방통위원장에 대한 투쟁 속에는 그것을 위한 사전 '길들이기' 전략도 숨어 있다.
그것을 위해 방송의 국민주권도, 방송의 미래도, 경영의 개혁도, 무사안일에 대한 반성이나 희생도, 6년 전 스스로 그토록 주장했던 인사청문회도 거부된다. 오직 권력을 위해 그들은 오늘도, 내일도 성명서를 쏟아내고, 시위를 한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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