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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아프간의 고통과 미국식 휴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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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아프간의 고통과 미국식 휴머니즘

입력
2008.03.1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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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뛴다. 하늘에 뜬 연을 쫓는다. 지켜보는 어른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거리엔 말간 햇살이 가득하고, 여인들도 자연스레 남자들과 어울린다. 소박하고 평화로운, 소련 침공과 탈레반 집권 이전의 아프가니스탄 카불 풍경이다. ‘카불’이라는 지명이 연상케 하는 지옥의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카불의 부잣집 소년 아미르와 하인의 아들 하산은 친구다. 유약한 아미르를 보호하기 위해, 하산은 새총을 가슴에 품고 다닌다. 아미르는 연싸움 대회에서 우승하고, 전리품인 상대 연을 주으러 뛰며 하산은 소리친다. “널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연을 찾아올 수 있어.” 그러나 그 길에, 하산은 성폭행을 당한다.

하산을 향한 아미르의 미안함은 어처구니 없이 증오로 굳는다. 아버지를 부추겨, 그는 하산 부자를 쫓아낸다. ‘미안해’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이 도련님은, 그렇게 평생 남을 죄의식을 가슴 속에 심는다. 그 빚은 긴 세월을 돌아 미국에 정착한 그의 기억을 두드린다. 하산이 자신의 이복동생이고, 그가 아들을 남기고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미르는 죽음을 무릅쓰고 조카를 데리러 길을 떠난다.

영화는 따뜻한 휴머니즘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그것은 ‘분위기’다. 미국인의 가족주의, 미국인의 세계관, 미국인의 휴머니즘이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절규와 고통은, 그런 미국적 이상향을 직조하는 태피스트리의 재료일 뿐이다. 내전 후의 아프가니스탄은 지옥으로 그려지고, 그가 조카를 데리고 탈출한 미국의 해변 마을은 천국으로 그려진다.

조카에게 연 날리는 법을 가르치며 “네가 원한다면 천 번이라도 연을 찾아올 수 있어”라고 말하는 아미르의 젖은 목소리가, 청아함 대신 느끼함으로 들리는 까닭이다. 영화 가운데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대사는 이것이다. “한두 명 팔아서 남은 아이들이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카불의 가난한 고아원장의 절규가, 느끼한 휴머니즘보다 인간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네버랜드를 찾아서> <몬스터 볼> 의 마크 포스터가 연출을 맡았다. 잔잔한 여운을 주되, 깊은 성찰은 부족해 보이는 이 영화는 13일 개봉한다. 12세 관람가.

유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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