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의 '새판짜기'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내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대형사들은 '몸집불리기', 중소형 및 신설사들은 '틈새찾기'에 나서면서 생존전략을 찾지 못한 증권사들은 자연도태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마감된 증권사 신규설립 신청접수에 13개 기업이 대거 몰린 데 이어, 기존 증권사들도 인수ㆍ합병(M&A)이나 지점확대 등을 통한 외형확대에 나서고 있다.
증권사 신설 예비인가 신청서를 제출한 13곳중 기업은행, SC제일은행, KTB네트워크, STX팬오션 등이 종합증권업을, 나머지 9곳은 종합증권업무 중 인수주선 등 IB업무를 제외한 자기매매업이나 위탁매매업을 신청했다. 금감원은 7월까지 증권사 신규 설립건을 마무리 짓고, 8월부터는 자통법에 따라 기존 증권사의 재인가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증권사 수는 54개. 신규 신청한 13개사가 모두 인가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국내 증권사 수는 무려 67개에 이르게 된다. 국내 시장규모에 비춰볼 때 너무 많은 규모다.
따라서 M&A 등을 통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게 증권업계의 시각이다. NH투자증권 허대훈 연구원은 "증권사 신규설립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존 증권사의 몸값이 낮아지는 효과가 기대된다"며 "향후 물적 기반이 필요한 신규 증권사나 자금여력이 충분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증권사 M&A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차그룹의 신흥증권 인수는 그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어 CJ는 6일 계열사인 CJ투자증권과 CJ자산운용의 매각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공시했는데 현재 롯데 유진그룹 NH투자증권 ING그룹 등이 유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매각금액은 1조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강력한 인수후보로 꼽혔던 현대차는 10일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인수설을 공식 부인했다.
대형증권사 중에는 대신증권 등이 매물로 거론되는데, 최근 롯데그룹 인수설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교보증권은 외국계 금융사 등이 인수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6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매각설을 부인했다.
이밖에 중소형 증권사인 한양증권, 부국증권 등은 대주주가 금융업과 직접 관계가 없고 특화된 경쟁력이 부족해 피인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트레이드증권은 지난 7일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대주주 지분 매각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면서 6일에 이어 10일에도 상한가를 기록했다.
증권업 진출을 선언했던 롯데그룹과 아주그룹 등이 증권사 신규 설립신청을 하지 않은 것도 M&A 후폭풍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증권사가 재인가 절차에 들어가는 8월 이전에 몇 차례 딜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며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고집하지만 않는다면 우호적 M&A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M&A설에서 자유로운 증권사들은 지점 확대를 통해 고객접점을 확대하는 등 경쟁력 확보에 분주한 모습이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93개였던 지점을 지난해 말까지 132개로 늘렸으며, 올해 들어서만 12개를 더 개설했다.
올해 안에 200~250개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지난해 71개의 지점을 142개까지 확대했으며, 올해 들어 5개 지점을 더 확보했다.
업계에서는 향후 증권업계가 조만간 시가총액 5조~10조 정도의 빅3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한다. 나머지 중소증권사들은 특정분야 중심의 틈새시장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화에도, 틈새시장모색도 힘든 증권사들은 결국 M&A시장에 나올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철호 선임연구원은 "증권-은행, 산업-금융, 국내외 등의 경계가 없는 전면전이 시작되고 있다"면서 "몸집 불리기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미래에셋이나 키움 등과 같은 새로운 모델이 자리잡는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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